모바일 기기의 숙명은 충전(充電)이다. 모든 작업이 무선으로 가능한 모바일 기기도 이때만큼은 볼썽사나운 충전 케이블을 꽂고 이동의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 매일같이 충전 플러그를 뺐다 끼웠다 하다 보면 스마트폰의 충전 단자 부분이 망가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아침 출근이나 등교 직전에 스마트폰이 완전 방전(放電)된 것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이런 불편을 해소해 주는 것이 '무선 충전(Wireless Charging)' 기술이다. 무선(無線) 충전은 전기(電氣)를 자기장(磁氣場)으로, 자기장은 또 전기로 바꿀 수 있다는 전자기유도(電磁氣誘導)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원리 자체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효율성과 안전성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모바일 기기의 만개(滿開)에 힘입어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시장조사 기업인 IHS는 무선 충전 기술이 스마트폰, 가전 기기, 전기자동차 등으로 확산되면서 시장 규모가 2013년 2억1600만달러(약 2355억원)에서 2018년 85억달러(약 9조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5년 새 무려 40배가 커지는 '대박 시장'인 셈이다.

◇생활 속으로 파고든 무선 충전 기술

무선 충전 기술은 '자기유도'와 '자기공명(共鳴)', '전자기파' 방식으로 나뉜다. 자기유도 기술은 변압기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효율이 높지만 수 밀리미터(㎜) 미만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충전이 가능하다. 삼성전자 갤럭시S6와 구글의 넥서스5에 채용된 충전 방식이 바로 이 기술이다.

전동 칫솔과 미용 기구 등 소형 가전에도 널리 쓰이면서 '치(Qi·전기를 뜻하는 한자 '氣'의 중국식 발음)'라는 국제 표준도 생겼다.

아모레퍼시픽이 지난해 내놓은 진동 세안·화장 기기 '메이크온'도 치 방식의 무선 충전 기술을 채택, 사용 후 충전기 위에 올려 두기만 하면 자동으로 충전된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국제 표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갤럭시S6 충전기에도 메이크온을 충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자기유도 방식은 근거리에서만 충전이 가능한 것이 단점이다. 충전판(충전패드) 위에 충전할 기기를 딱 붙여서 올려놓아야만 하는 불편이 있다. 이를 해결해 주는 기술이 자기공명 방식이다. 공명이란 소리굽쇠 두 개를 떨어뜨려놓고 한 개를 울리면 다른 하나도 따라서 소리를 내는 현상을 말한다.

자기공명 기술은 충전기와 스마트폰에 같은 성질의 자기장에 공명하는 코일을 탑재해 전기 에너지를 전달한다. 효율은 약간 떨어지지만 충전기 근처에만 있어도 저절로 충전이 된다.

국내 무선 충전칩 업체 맵스는 이러한 자기공명 방식의 무선 충전기 세트를 개발, 하반기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이 기술을 적용하면 스마트워치를 낀 채로 충전기 근처에만 있어도 저절로 충전이 이뤄져 편리하다.

최근엔 전자기파 방식의 스마트폰 충전 케이스도 등장했다. 니콜라 랩스라는 미국 벤처기업이 개발한 아이폰6용 케이스는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LTE,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 다양한 전자기파를 포획해 전기로 바꿔주는 안테나와 에너지 변환 장치를 내장했다. 이 제품을 쓰면 아이폰6 배터리 사용 시간이 30% 늘어난다는 것이 이 업체의 설명이다.

무선 충전 기술은 스포츠 과학 영역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아디다스가 내놓은 스마트 축구공 '마이코치 스마트볼(miCoach Smart Ball)'이 좋은 사례다. 이 제품은 축구공 내부에 위치와 가속도, 압력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와 이를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는 장치 및 충전 배터리를 내장하고 있다. 밀폐된 공의 특성 때문에 충전 단자를 설치하기 힘들어 전용 충전대를 이용한 무선 충전 방식을 채택했다.

코끼리열차도.. 버스도.. 정수기.. 스마트폰도.. 高速鐵도.. 미용기구도

◇확산되는 무선 충전 기술

이러한 가정용 무선 충전의 원천 기술은 누가 갖고 있을까. 특이하게도 글로벌 직접 판매 기업 '암웨이'다. 암웨이는 2000년 '이커플드'라는 이름으로 무선 충전 기술의 특허를 얻었고, 이 기술은 치(Qi) 방식 무선 충전 기술 표준의 근간이 됐다. 암웨이 윤성은 부장은 "물탱크 속에 자외선램프를 집어넣어 살균 효과를 내는 정수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누전 위험을 막기 위해 무선 충전 기술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국제무선충전표준협회(WPC)는 2009년 국제 표준 규격으로 자기유도 방식의 치 표준을 제정했다. 현재 이 기술을 이용하는 제품은 갤럭시S6를 비롯, 540여개에 이른다.

무선충전 기술이 작은 제품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각광받는 전기차도 무선 충전을 도입하는 중이다. 배터리 충전에 필요한 거추장스러운 전기선을 대체하기 위해서다. 미국 퀄컴은 자기유도 방식으로 전기차의 배터리를 무선 충전하는 '헤일로' 기술을 개발 중이다. 도로 위나 지표면 아래에 충전판을 설치해 놓고 차량이 서서히 움직이는 동안 전기차 배터리가 충전되도록 했다. 실용화되면 전기차를 충전소에 세워놓고 1시간씩 충전할 필요가 없어진다. 현재 150~300㎞ 정도에 머물고 있는 전기차의 최대 주행 거리 역시 대폭 늘어날 수 있다. 퀄컴은 전기 에너지를 쓰는 경주용 자동차 대회 '포뮬러E'에서 헤일로 기술을 세이프티카(안전통제차량)에 탑재해 이 기술의 실용성을 입증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해 2~3년 내에 상용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우리나라는 무선 충전이 가능한 대중교통수단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속열차다. 철로를 따라 설치된 급전선로(給電線路)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으로 열차의 전기모터에 연결된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바로 전기모터에 전기를 흘려보내는 기술이다. 2009년부터 정부의 신성장동력 과제로 이 연구를 해온 카이스트 조동호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경기도 의왕 시험장에서 고속철도에 1메가와트(㎿)급 무선 전력 전송 시스템을 시연, 국제철도연맹에서 혁신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기술이 실용화되면 공중을 지나는 전선 설비가 필요 없어진다. 조 교수는 "이 기술은 앞으로 시속 500㎞ 고속열차와 해중(海中)철도, 모노레일 등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