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금융부 안재만 기자입니다. 오늘은 '먹튀 자본'의 오명을 안고 있고 최근 한국 정부와 5조원대 소송을 벌이면서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선 론스타펀드를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한국은 어쩌다가 해외 사모펀드 중 하나(그것도 그렇게 크지는 않은)에 불과한 론스타와 이토록이나 지긋지긋한 악연을 맺게 됐을까요?

ICSID에 기재된 한국 정부와 론스타 소송 건의 중재절차.

◆ 정부, 잇따른 공적자금 투입에 부담느끼고 매각 추진…하필이면 그 대상이 론스타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부실화된 외환은행을 정상화하기 위해 해외 자본을 유치합니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고 부실 금융사들이 쏟아져 나온 상황에서 외환은행에 투자할 국내 자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코메르츠방크가 외환은행에 출자를 합니다. 코메르츠방크는 "정상화를 우리가 모두 책임질 수는 없으니 정부도 증자에 참여하라"고 요구했고 정부는 이를 수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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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규모 유상증자에도 불구하고 외환은행은 정상화되지 못했습니다. 현대그룹 사태 때문입니다.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이 줄줄이 부실화되며 외환은행은 다시 휘청였습니다. 코메르츠방크는 유상증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훗날 알려진 바로는 이 때부터 이미 코메르츠방크와 정부 당국은 외환은행 매각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또 다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데 부담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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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인수자가 등장한 것은 2003년입니다. 바로 론스타였습니다. 론스타는 처음엔 주요주주로 출자만 할 계획이었지만 이내 경영권을 인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인수가액은 1조3834억원이었습니다. 지금은 "외환은행 같은 회사를 어떻게 그렇게 헐값에 론스타에 넘겼느냐?"는 비난이 나오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외환은행은 사겠다는 곳이 없어 정부가 골치를 썩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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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각한지 불과 2년후부터 “잘못 판 것 아니냐?”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청사진을 밝혔지만 "잘못 팔았다"는 지적은 인수한지 불과 2년 후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외환은행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과정에서 그때 왜 팔았는지를 되짚어보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몇가지 문제점이 발견된 것입니다.

론스타가 은행을 인수할 수 없는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이었다는 얘기부터, 억지로 외환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을 낮춰 론스타로 졸속 매각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또 론스타는 2005년부터 보유 지분 매각을 조금씩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이 것도 반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투자 2년여만에 엄청난 고수익을 챙기고 떠나겠다고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이후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자회사였던 외환카드를 합병할 때 허위 감자설을 퍼뜨려 합병비율이 외환은행에 유리하게끔 조작(주가 조작)한 정황이 포착된 것입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고 론스타는 항고를 포기했습니다.

론스타가 벨기에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자회사를 통해 세금 한푼 내지 않고 회사나 빌딩을 매각하려 한 것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뒤에 다시 거론하겠지만 과세 여부는 한국과 론스타간 소송에 있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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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했던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

◆ 론스타 “2008년 한국 정부 때문에 손해봤다”

외환은행 졸속 매각과 관련해 검찰 수사가 진행되다보니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은 차질을 빚었습니다. 그래도 론스타는 계속 매각 파트너를 찾아냅니다. 2006년엔 KB금융지주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고, 2007년에는 싱가포르 DBS은행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다만 이들 은행과는 후속 절차를 밟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엔 파트너를 찾아내고야 말았는데, HSBC은행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금융당국은 쉽사리 승인 결정을 내줄 수 없었습니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데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태와 관련해서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HSBC로의 매각은 실패로 끝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HSBC가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한 게 직접적인 원인이었는데, 론스타는 금융위의 승인 지연 때문이라고 반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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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한 것은 2012년입니다. 론스타는 2012년 3조9157억원에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로 매각합니다. 이는 HSBC에 매각했을 때 금액(지분 51%)인 5조9376억원 보다 2조원 가량 낮은 수준입니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5조원대 소송을 벌이게 된 가장 큰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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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피난처(벨기에) 법인 통해 투자한 론스타…과세대상 논란

론스타는 떠났지만, 그 후폭풍은 끝나지 않습니다. 세금이 쟁점으로 부각됩니다. 론스타가 국세청과 갈등을 빚은 것은 외환은행 매각 때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론스타는 건설업체 극동건설, 강남의 스타타워 등에도 투자했는데 이를 매각할 때도 세금 부과를 놓고 국세청과 전쟁을 치렀습니다.

론스타는 벨기에 법인(LSF-KEB홀딩스SCA, 스타홀딩스SCA 등)을 통해 투자한 것이니 만큼 한국과 벨기에가 체결한 이중과세방지협정(투자보장협정·BIT)에 따라 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고 국세청은 벨기에 법인이 페이퍼컴퍼니일 뿐이고 실제로는 미국 본사가 주도했던 만큼 세금 부과가 적법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투자보장협정이 무엇이기에 논란이 되는 것일까요. 투자보장협정이란 과거 나라간 투자가 활발하지 않던 시절 상호국간 투자할 때는 세금을 면제해주는 협정입니다. 한국은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과 함께 1974년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최근 진행되는 자유무역협정(FTA)에서는 페이퍼컴퍼니를 걸러내는 조항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1970년대엔 이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론스타는 처음부터 세금 부과를 피하기 위해 한국과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해놓고 있던 벨기에에 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벨기에는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세회피가 가능한 지역을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론스타는 한국, 벨기에 어느 쪽에도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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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스타, 한국 정부 상대 5조원대 ISD 소송 제기…2016년쯤 결과 나올 듯

론스타는 한국이 투자보장협정을 어겼다며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제기합니다. 한국 정부는 기획재정부와 법무부, 금융위, 금감원, 국세청 등으로 구성된 특별대응팀을 꾸리고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판부 판결을 위한 심리는 지난 15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페이퍼컴퍼니는 투자보장협정 대상이 아니며 HSBC로의 매각 승인을 내주지 않았던 것은 관련된 사법 판결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소송 결과는 빠르면 내년쯤 나올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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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론스타 사태’는 한국 금융에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당시 론스타로의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했던 공무원들이 잇따라 법정에 서면서 공무원사회의 보신주의가 심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촉망받던 공무원이었던 변양호 전 국장은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내긴 했지만 남은 상처가 아직 큽니다.

해외자본을 놓고 투기 자본이라며 적대시하는 경향도 커졌습니다. 지금도 국내 기업이 해외 자본에 팔릴 때마다 론스타는 꼭 한번씩 거론됩니다. 이미 지분을 다 팔고 떠난 론스타이지만 천문학적 금액의 소송전이 벌어지면서 론스타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인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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