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은 크게 격식을 따지지 않는 소탈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해외 방문 시 전용기 대신 일반 여객기를 주로 이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시간을 꼭 지켜야 하거나 다급한 상황이 아니면 되도록 전용기 이용을 자제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이 수행원 없이 직접 여행용 가방을 끌고 출장에 나서면서 고위 경영진 해외 출장 시 다른 임원들이 공항에 줄지어 나왔던 ‘의전’도 사라졌다.

삼성은 이전에 최고위 경영진들이 출장을 나갈 때 직원들이 수 주일부터 관련 동선을 미리 탐방하고 식당 음식까지 미리 먹어보는 등 의전에 신경을 심혈을 기울였다. 식당이나 호텔 등의 가전제품을 자사 제품들로 바꾸거나 바꾸기가 어려울 경우 제품을 가리는 일까지 있었다. 이 부회장의 의전 거부는 이러한 관행을 없애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지하 2층 미용실에서 이발을 마치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다.

◆ 의전 폐지, 소탈행보…이발도 사내 미용실서 후딱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열리는 수요 사장단회의에서도 ‘의전 폐지’의 영향이 드러난다. 예전에는 계열사 사장들이 들어서면 보안 요원들이 90도 인사를 했으나 이제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이 부회장은 업무 보고 및 지시도 인쇄된 보고서나 이메일이 아니라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하기도 한다. 급한 일이라면 형식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삼성 내외부에서 이 부회장은 대기업 오너답지 않은 소탈한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삼성전자가 서울 태평로 사옥에 입주해 있던 2008년까지 이 부회장은 종종 바로 옆 삼성생명 지하에 있던 구내 식당에 혼자 내려가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경복고 동창들과 만나면 삼겹살을 즐겨 구워먹고 콩국수를 좋아해 옛 태평로 사옥 뒤편에 있는 콩국수 집 진주회관에 친필 사인이 걸려있을 정도다. 몇 해 전에는 삼성 임직원들과 회사 근처 한정식 집에서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을 함께 하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발도 근무 중 잠깐 짬을 내 서초동 삼성사옥 지하 2층 미용실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발비는 2015년 4월까지는 직원 할인가 기준 1만5000원, 이후에는 3000원 오른 1만8000원(외부인은 2만2000원)이다. 다른 손님과 특별한 차이가 없다는 게 미용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건희 회장 등 다른 오너 일가들이 명품을 즐겨 입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 부회장은 오히려 남성 셔츠 한 벌에 10만원 정도인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를 입고 다닌 것으로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MBA),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케네디스쿨)과 경영대학원(박사과정)를 함께 다닌 동문들도 “재벌가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달리했다”는 평가를 내리곤 한다.

지난 7일 경기도 평택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단지 기공식 행사에서 이재용 부회장(앞줄 오른쪽 두번째부터)과 박근혜 대통령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행보는 과감하게…삼성 1인자 우뚝

행보는 소탈해도 삼성을 대표하는 자리에는 항상 제일 앞에 선다. 5월 7일 경기도 평택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단지 기공식 행사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나란히 섰다. 삼성은 세계 최대 규모가 될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에 2017년까지 15조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상태. 이번 투자 결정도 이 부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거란 분석이 많다.

1월 19일 신라호텔에서 열렸던 삼성 신임 임원 승진 축하 만찬도 이재용 부회장이 주재했다. 이 부회장은 100여명의 취재진이 모여있는 신라호텔 로비를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갔다.

이미 행사장엔 240여명의 신임 임원과 40여명의 계열사 사장단, 그리고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이 이 부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부회장은 승진한 신임 임원들을 축하하고 부친을 대신해 “도전해 달라”고 주문했다.

재계에서도 이 부회장의 과감해진 행보에 “삼성이 서서히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 이후 이 부회장이 삼성을 대표해 여러 행사를 치르긴 했어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워 했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예전보다 훨씬 과감해진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