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주주총회가 열렸던 3월 13일. 예전과 달라진 주총 풍경에 투자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의장인 권오현 부회장과 윤부근, 신종균 사장 등 대표 CEO들이 주총장 입구에서 직접 주주들을 맞았다.

지난해 권오현 부회장의 일사천리 진행으로 40여분 만에 끝났던 주총이 올해는 각 사업부문장들이 돌아가며 사업 현황을 설명하느라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사내외 이사들의 자리도 무대 앞쪽으로 전진배치해 주주들과 마주보도록 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삼성의 변화에 대해 “실용과 소통을 중시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삼성의 회사 경영에서 이 부회장의 색깔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13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등 주요 임원들이 직접 나서 사업현황을 설명했다.

◆ 현장경영, 소통하는 CEO 이미지 주력

현장을 찾는 이재용 부회장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이 부회장은 갤럭시S6 출시를 앞두고 올해 초 삼성전기 공장을 방문해 부품 양산 상황을 보고 받았다. 출시 이후에는 미국 등을 방문해 현지 통신사,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들을 만나며 세일즈에 나섰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6에 금속 소재를 사용하기 위해 일본 화낙으로부터 금속 절삭 기계 2만대를 들여오는 2조원대 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 이재용 부회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과 맞물려 갤럭시S6가 ‘이재용폰’으로 불리게된 이유다.

중국, 일본 등 삼성이 공을 들이는 현지 법인 출장도 잦다는 게 삼성전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2월 이 부회장의 일본 법인 현지 방문 이후 삼성은 2003년 일본 진출 50주년을 맞아 세운 도쿄 롯본기 사옥을 팔고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이다바시 지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개별 사업부장(사장)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지시하고 있다"면서 “일부 임원 회의에 참석해 현안을 직접 챙기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인수합병(M&A) 잦아진 삼성…쪼개고 붙이고 구조개편 본격 시동

이건희 회장 입원 이후 삼성전자가 인수한 기업 리스트

인수합병(M&A)을 적극적인 기업 경영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을 느끼게 하는 변화다. 삼성은 1990년대 중반 미국 컴퓨터 업체 AST 등 해외 기업 인수에 나섰다가 큰 손실을 보고 이후로는 M&A를 기피하는 성향을 보였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2014년 5월 이후 삼성전자는 유망한 IT기업들을 잇달아 사들이고 있다. 갤럭시S6에 탑재된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삼성 페이’의 핵심 기술을 개발한 루프페이,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개발사 스마트싱스와 같이 인수 후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회사도 여럿이다.

반대로 비핵심 사업이라 판단되면 과감하게 정리하고 있다. 2014년 11월 한화에 넘기기로 한 석유화학, 방위산업 부문 4개사의 매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들은 구조조정이 필요한 적자 기업은 아니었다. 삼성의 차세대 주력사업이 아니었을 뿐이다.

이러한 전략은 다른 IT 기업은 물론, GE와 같은 미국 대기업들이 자주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02년 GE의 크론토빌 연수원에 입소해 최고위 임원 교육 과정인 EDC(Executive Development Course) 과정을 밟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3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을 방문한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와 협력 관계를 논의한 뒤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신종균 삼성전자 IM부문장, 순다르 피차이 구글 부사장, 래리 페이지 CEO, 이재용 부회장,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 니케시 아로라 당시 구글 부사장(현 소프크뱅크 부회장)

◆ B2B 사업 강화…“성장보다는 수익성”

삼성이 B2B(기업간 거래) 사업을 강화한 것도 선진국 기업들을 벤치마킹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상업용 디스플레이(디지털사이니지) 전문기업 예스코, 미국 시스템 에어컨 유통업체 콰이어트사이드, 프린팅 솔루션 업체 캐나다 프린터온과 브라질 심프레스 등 B2B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인수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또 직접 톰슨 로이터, 시스코, 오라클 등 세계 최고의 기업 간 거래(B2B) 업체 CEO들을 만나 플랫폼 사업 개발을 의논했다. 이를 통해 제품 판매량과 이익률을 한번에 높이려는 이 부회장의 전략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관계만 갖는 건 아니다. 지난 2011년 애플이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현지 법원에 냈을 때, 이 부회장은 직접 맞소송을 제기해 전면전을 벌인다는 결정을 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소송까지 불사하면서 특허 사용료 재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 삼성의 새로운 변화를 진단한 기사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기업 규모의 성장보다는 수익성에 집중할 것”이라며 “부친 이건희 회장과는 다른 전략으로 회사를 이끌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