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중인 필립 코틀러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 교수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 책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책들은 너무 두꺼워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20만부 팔렸지만, 장장 500쪽(한글 번역본은 820쪽)이 넘는 책을 끝까지 읽기는커녕 처음 2개 장을 넘긴 독자들도 그다지 많지 않다.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는,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사회와 경제 시스템에 대해 더욱 더 간명하게 설명해줘야 한다.”

그래서, 이 83세 원로 경제학자는 직접 팔을 걷어부쳤다. 지난달 미국과 국내에 동시 출간된 ‘다른 자본주의’의 저자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의 집필 동기다.

현재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인 그는 이른바 ‘마케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대가다. 일찌기 경제학의 명문대를 옮겨가며 3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밑에서 공부했다. 시카고대 석사 과정 때 자유시장주의의 거두인 시카고대 밀턴 프리드먼 교수 문하에 있었고, MIT 박사 과정 때는 케인스 학파를 대표하는 MIT의 폴 새뮤얼슨과 로버트 솔로 교수한테 수학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2005년 25개국 경영인 1000명을 상대로 벌인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분야 저자/경영 구루’ 설문조사에서 피터 드러커, 빌 게이츠, 잭 웰치 다음으로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정도면 경제계에서도 ‘주류 중의 주류’라 할 만하다. 그런 학자가 이번 책에 쓴 내용으로 보면 자본주의를 숫제 ‘벌집’처럼 만들어놨다. 14개에 이르는 장(章)을 모두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무슨 생각에서일까. 이메일로 물어봤다.

-자본주의의 결함을 싸잡아 비판하는 책을 냈다. 이른바 주류 경제학의 마케팅 이론 대가가 이런 책을 썼다는 게 다소 의외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대다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중간층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노동자층은 생활임금도 벌지 못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다.

-'시장의 효율'을 이야기했던 학자가 이제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은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Yes and no)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경우에는 잘 작동하고 있고, 놀랄 만한 풍요를 생산해내고 있다. 하지만 노동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임금은 낮고 실업률은 너무 높다. 또한 금융 시장도 뒤틀려있어서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만 기능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은 그 전에도 많았다. 당신 책은 다른 비판서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하나 혹은 여러 문제를 파고든 책들은 있었다. 나는 자본주의의 14가지 결함을 종합적으로 망라해서 열거하고 검토하는 책을 썼다. 14개 각 장에서 왜 이런 결함들이 생겨나는지 설명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주요 제안들을 제시했다. 내가 제시한 해결책들이 더 많은 생각을 끌어내는 자극제가 되었으면 한다.

-자본주의의 14가지 결함을 지적했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가?

1)지속적인 빈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2)소득과 부의 불평등 확대를 낳는다.
3)수십억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주지 못한다.
4)자동화가 빨리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
5)기업들에 대해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 비용을 물리지 않는다.
6)적절한 규제가 없이 환경과 천연자원이 훼손되고 착취된다.
7)경기 순환과 경제 불안정이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8)공동체와 공공자산을 희생신키는 대신 개인주의와 자기이익을 강조한다.
9)소비자에게 높은 부채를 조장해, 생산 중심 경제보다 금융 중심 경제로 몰아간다.
10)정치인과 기업의 이익이 결탁해 다수 시민의 경제적 이익을 뒤엎는다.
11)장기적인 투자 계획보다 단기 이익을 위한 계획을 선호한다.
12)상품의 품질과 안전, 허위 과장 광고, 불공정 경쟁 등에 관한 규제가 필요하다.
13)국내총생산(GDP) 성장에만 관심을 좁히는 경향이 있다.
14)시장의 작동 공식에 사회적 가치와 행복 요소를 가져올 필요가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점점 심해지고 있는 소득 불평등 문제다. 나는 소득이 완전히 평등하게 분배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다른 반대쪽 극단으로 너무 갔다. 세계에서 소득 최상위 85명의 재산이 하위 35억명의 재산보다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나는 CEO가 평균적인 노동자의 600배 이상에 해당하는 2000만~5000만달러의 연봉을 집에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노동 계급의 임금이 너무 낮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의 상품과 서비스를 살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결국 신용카드로 값을 지불하게 되고 빚을 더 많이 지게 된다. 나아가서 자산 압류에 직면하거나 가정 불화까지 겪게 된다.

-당신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14가지 결함은 아주 새롭다기보다 산발적으로 논의돼온 것들이다.

14가지 결함 각각에 대해 씌어진 책들은 허다하다. 내 책은 그것을 한 권에 종합했다. 가령 6장은 지구의 자원 고갈과 기후변화 위험에 관한 것이다. 내 책에는 이 문제와 관련한 주요 이슈들이 망라돼 있다. 그 주제에 관한 한 다른 환경 서적 수십 권을 다 읽어볼 필요가 없다. 2장에서 다룬 소득 불평등 심화 문제만 해도 토마 피케티의 800쪽짜리 ‘21세기 자본’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

내 책은 14개 주요 이슈와 분석, 해법을 250쪽 단 권에서 다 다뤘다는 점에서 다른 책과 다르다. 나는 이 책이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한 최신 최상의 교과서가 될 수 있도록 썼다. 이 시대의 주요 이슈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은 여러 무미건조한 경제학 교과서들보다 훨씬 낫다고 자부한다.

-칼 마르크스 이래 일부 비판자들은 자본주의가 자체 모순 때문에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지속돼온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마르크스는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빈곤해지고, 이것이 노동자 세력의 급진화로 이어져 결국 파업과 폭력이 일어날 것이라고 봤지만 실제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상당 부분은 기업과 정부가 적절하게 대응했기 때문이었다. 기업은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을 주기 시작했고, 고소득과 재산에 대해서도 높은 세율의 세금을 물리는 데 합의한 결과였다. 의원들이 적정한 법안을 통과시키면 노동 계급의 만족도는 올라가게 될 것이다.

지금 과제는 자본주의에서 부를 늘리는데 함께 협력한 다양한 당사자들이 자본주의로부터 얻은 이득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당신은 책에서 자유방임형부터 복지형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다양한 유형을 소개했다. 당신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나는 스칸디나비아식 자본주의 모델을 선호한다. 스칸디나비아의 복지국가 모델은 무엇보다 모든 시민들이 좋은 교육을 누리고, 보건 의료 혜택을 잘 받았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또한 이 나라들은 굶주리거나 홈리스로 전락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카우보이 자본주의의 가혹함과 공산주의의 획일화 사이에 있는 중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 사회의 자본주의 개선 노력 중 하나로 '의식 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를 이야기했다. 이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의식 있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개선'한 것이다. 이것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옛날식의 자본주의를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옛날식 자본주의는 회사의 목적을 기업 소유주와 주주의 수익을 최대화하는 것으로 삼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종종 노동자나 다른 공급자들에게는 최대한 적게 주는 것을 뜻했다. 그것이 소유주들에게는 최대 이익을 안겨줄 것이라고 믿었다.

반면, 의식 있는 자본주의는 회사의 목적이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고, 모든 이해관계자들, 즉 고용자들, 공급자들, 배급유통업자들, 소매업자들, 지역 공동체들 모두에게 공정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회사의 경영자들은 군림하는 보스가 아니라 대화하는 멘토를 지향한다. 그럼으로써 모든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최선의 것을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사의 문화는 투명성과 진정성, 배려하는 태도를 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성공에는 민주주의의 견제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민주주의 자체가 여러 결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할까?

자본주의만 고쳐야 할 결함이 있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역시 단점이 있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야말로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돌아가는 데 대단히 큰 영향을 준다.

오늘날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돈을 모아야 한다. 이들은 그 돈을 주로 대기업과 부자들로부터 지원 받는다. 그 결과 이 후원자들은 국회의원들이 자신들 사업에 영향을 주는 법안 투표 때 자기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하는 데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기업체들의 로비 활동은 너무나 광범위해서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이익보다는 개별 기업 이익을 대표하느라 더 바쁘다. 이런 선거 시스템이 문제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해 새롭게 사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 모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서구의 자유시장 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는 그 동안 빈곤을 줄이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외국과의 교역을 구축하고 주택 건설과 에너지 기반을 확충하는 데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비록 중국 지도부는 권위주의적이긴 해도, 그것은 보다 나은 국가를 건설하려는 선의에 입각한 것이었고 그런 노력에 있어서 대단히 열정적이었다.

중국 국민들로서는 불행하게도 이 시스템 속에서 어떤 자유들은 희생해야 했다. 이와 같은 ‘온정적인 권위주의 체제’의 또다른 사례는 리콴유 지도 하의 싱가포르였다.

하지만 권위주의 자본주의 체제의 다수는 부패했고 온정적이지도 않았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경우가 그렇다. 이런 나라들의 경우에는 국민들은 고통 받고 있는 와중에 지도자들은 스위스 같은 곳의 비밀 은행 계좌에 막대한 재산을 쌓아둔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민주주의에 관한 한 윈스턴 처칠과 똑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처칠은 민주주의야말로 끔찍한 정치 체제이지만 다른 어떤 것들보다는 낫다고 했다.

-현재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진단하나?

한국은 아주 역동적인 자본주의 유형에 속한다. 삼성, LG, 현대, 기아 같은 한국 기업들의 성장과 혁신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상깊게 생각한다. 바라건데, 한국의 노동자들이 일한 노력에 비례해 자신들의 임금이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

-최근 자동화가 빨라지면서 일자리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로봇과 인공지능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신도 책에서 ‘영구적인 장기실업층’의 등장 신호에 대해 언급했지만 해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나는 로봇이 우리가 하는 단순 반복 업무를 대신하는 것에 대해서는 환영한다. 우리가 왜 인생을 반복적인 일을 하는 데 허비해야 한단 말인가? 문제는 이제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가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회계사나 변호사는 물론 심지어 관리직 사람들까지 자기 일이 뺏길 것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로봇과 소프트웨어 분야가 발달하면서 파괴되는 분야의 일자리 수보다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 수가 훨씬 적을 것 같아 걱정이다. 앞으로 사람의 일자리 부족이 세계 최대 현안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나는 내 책에서 활용 가능한 일자리를 나눠 갖기 위한 몇가지 해법들을 이야기했다.(주 3일, 하루 11시간 근무 시스템, 장기 무급휴가, 직업 훈련과 취업 후 재교육 프로그램 확대, 낡은 사회인프라 재건 사업 발주, 사회적 임금제)

다른 한편에서는, 또 한번 새로운 산업이 출현할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다. 과거에 증기 기관이나 자동차, 철도, 라디오, 텔리비전, 컴퓨터, 인터넷 같은 혁신들이 일어났을 때 신규 일자리가 대량으로 생겨나곤 했다. 만약 아주 대단한, 모든 사람이 사고 싶고 쓰고 싶어하는 신상품이 생기고 그것을 생산하는 신산업이 다시 생겨난다면 일자리가 풍부해질지도 모른다.

-임금/소득 격차 심화를 시급한 문제로 이야기하고 최선의 해법으로 세제 개혁을 말했다. 하지만 과세에 대해서는 저항이 거세다. 성공한 나라도 많지 않다.

추가 세금은 노동계층이 아닌 부유층으로부터 징수돼야 한다. 부자들은 과세가 오히려 신규 사업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를 막게 될 것이라고 반대론을 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사업을 계속 성장하게 해야 한다. 그 중 일부는 한국을 떠나 세금이 낮은 지역으로 사업을 이전할 것이라고 위협할 수도 있다. 물론 그들이 자신의 돈을 해외로 가지고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기업이나 부동산을 가져갈 수는 없다.

그들에게 추가 징수된 세금은 국방비나 다른 불필요한 용도가 아닌 교육과 보건,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라. 추가 징수된 세입은 독립된 곳에서 관리하도록 해서, 모든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공개하도록 하면 된다.

-14가지나 되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는?

나는 언제나 새로운 문제에 맞서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능력에 감명 받는다. 수많은 구식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가가 되어 문제와 씨름하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려고 하는 젊은이들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본다.

우리는 이전에도 위대한 혁신들을 이뤄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위대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기술적 혁신이 일어나고 그것들이 우리 삶을 더 낫게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낙관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기필코 문제의 해법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희망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돼 있다. 반면에, 비관적인 태도는 그냥 나앉아 불평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비관주의는 결국 자기 충족적인(self-fulfilling) 예언으로 귀결되고, 궁극에는 어떤 좋은 일도 일어날 수 없게 된다. 나는 언제나 낙관주의가 비관주의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필립 코틀러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 경제학의 명문대를 차례로 옮겨가며 3명의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밑에서 수학했다. 드폴대에서 2학년 때 졸업도 하기 전에 시카고대 석사 과정에서 받아줘 경제학 석사 학위를, MIT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대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시카고대에서 행동과학으로 박사후 과정을 마쳤다.

자유시장주의의 거두인 시카고대 밀턴 프리드먼 교수와 케인스 학파를 대표하는 MIT의 폴 새뮤얼슨과 로버트 솔로 교수로부터 배웠다. 파이낸셜타임스가 2005년 25개국 경영인 1000명에게 물어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분야 저자/경영 구루’ 순위에서 피터 드러커, 빌 게이츠, 잭 웰치에 이어 4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