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은 좋은 상품을 싸게 파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기획·디자인하고 물류 시스템의 혁신을 이뤄내야 합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최근 이마트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기존 틀을 깨는 변신을 당부했다. 내수(內需) 불황 장기화와 백화점·대형마트의 성장 정체, 온라인과 해외 직구(直購)의 역풍 같은 유통업계를 휩쓰는 '삼각 파도'에 대응하려면 기존 유통업의 프레임을 완전히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상품별 전문 브랜드 육성을 핵심 전략으로 삼는 대(大)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9일 서울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는 모습.

정 부회장은 최근 간부급 직원 100여 명이 모인 간담회에서도 스포츠용품 제조사인 나이키의 혁신 사례를 동영상으로 직접 보여주며 소개했다. 그는 나이키가 운동량 측정 기능을 갖춘 IT팔찌 '퓨얼밴드'를 개발하고 모바일을 통해 매장 결제와 재고 관리를 하는 혁신 사례를 설명하며 "우리도 나이키처럼 소비자의 생활을 바꿀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식품, 의류, 가전(家電) 같은 기업은 물론이고 주말에 우리의 잠재적 고객을 흡인하는 야구장이나 놀이공원도 신세계그룹의 경쟁자"라며 위기의식을 불어넣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1992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전국적으로 백화점(10곳)과 이마트(152곳) 점포를 확대하고 수퍼마켓·편의점·면세점까지 갖춘 유통 전문 그룹으로 성장한 20여 년을 '신세계그룹 1.0 시대'라고 한다면, 정 부회장은 앞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다른 업체보다 먼저 기획하고 개발하는 '신세계그룹 2.0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전문 브랜드'로 승부한다

정 부회장이 내세우는 첫째 변신 전략은 상품별 전문 브랜드 육성이다. 자체 브랜드 상품(PL·Private Label)을 종류별로 전문화해 제조 기업을 능가하자는 것이다. 이마트는 현재 SPA(초저가 의류) 브랜드인 데이즈, 간편식 브랜드인 피코크, 아웃도어·스포츠 제품 전문 브랜드인 빅텐 등 전문 브랜드 5개를 2018년까지 10개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신세계는 데이즈가 지난해 매출 4000억원을 올리며 유니클로에 이어 국내 2위의 SPA 브랜드로 도약한 데에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다. 신세계 관계자는 "자체 브랜드 판매 비중이 크게 늘면서 올 1분기 이마트 매출 성장률이 13분기 만에 처음으로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고 말했다.

또 단체 급식 계열사인 신세계푸드 한식(韓食) 뷔페 브랜드인 올반을 만들어 서울과 수도권 일대로 확산 중이며, 신세계백화점은 백화점 전용 브랜드를 개발하고 있다.

둘째 변신은 유통업체의 허리인 구매 담당 바이어의 역할 재정립이다. 구매 담당 바이어는 지금까지 좋은 제품을 싸게 구매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였으나 이제는 소비자의 기호와 트렌드 변화를 미리 파악해 새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개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지시로 바이어들의 특정 분야 근무 기간을 늘리고 해외 현장 교육을 확대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에 스포츠용품 바이어 5명을 미국으로 보내 스포츠 전문점을 탐방하게 하고 업종별 해외 박람회 참가를 적극 권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제품 기획·온라인 망라 종합 유통업체로

정 부회장의 이런 노력은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기존 방식의 대형마트와 백화점 운영으로는 미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출발한다. 주력 사업 분야인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이 지난해 각각 마이너스 성장을 한 데다 해외 직구와 모바일 거래의 폭발적 증가 등도 큰 부담이다.

신세계그룹은 이에 따라 경기도 하남을 시작으로 1조원씩 들어가는 복합 쇼핑몰 5개를 짓는 등 기존 유통 채널도 강화하고 있다. 2013년 말 시작한 편의점 위드미도 현재 646개점까지 확장했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새로 따내고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에 도전하는 등 면세점 사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하지만 "하드웨어인 유통 매장 확대만으로는 미래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대안은 백화점·대형마트는 물론 소매점(위드미)·아웃렛, 수퍼마켓(에브리데이) 등 다양한 형태의 유통 매장과 모바일 쇼핑몰 등을 아우르는 종합 유통업체로 탈바꿈하면서 이런 매장을 독자적으로 기획한 콘텐츠(상품과 서비스)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신세계그룹 고위 임원은 "상품 기획에서 판매까지 제품 소비의 전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이 신세계 2.0변화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