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초저금리 여건에서도 4대 금융지주가 올 1분기에 예상보다 좋은 실적을 냈다.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 차익인 순이자마진(NIM)은 줄었지만 수수료 수익이 늘고 비(非)은행 계열사들이 선전한 덕분이다. 대체로 지난해 1분기보다 실적이 좋아진 가운데, 금융그룹 간 희비는 뚜렷하게 갈라졌다. 지난해 KB사태로 만신창이가 됐던 KB금융지주가 새 경영진이 들어선 이후 '리딩뱅크'에 걸맞은 성적을 낸 반면 늘 남다른 실적으로 경쟁자들을 압도하던 신한금융그룹은 경남기업 등 부실기업 여파로 체면을 구기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KB금융, 중기 대출 늘려 '선방'

1분기 중 KB금융지주는 6050억원의 당기순익을 기록하며 6년 만에 1위를 탈환했다.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의 순익이 476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5.1%나 늘어난 덕분이다. 이익이 급증한 주된 이유는 마진율이 높은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의 1분기 중소기업 대출은 1분기 동안 2조4000억원이 늘어났는데, 이는 전년 동기(5000억원)보다 5배 이상 상승한 수치다. 은행권의 중소기업대출 예대금리차는 2.4% 선으로, 가계대출(1.4%), 주택담보대출(1.1%)보다 마진율이 높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 인하로 고객을 빼앗아오는 영업전략을 버리고, 대출금리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되 중소기업에 각종 비즈니스 컨설팅과 금융서비스를 늘리는 새로운 영업전략이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회성 호재의 영향도 컸다. 국세청과의 세금환급 소송에서 이기며 돌려받은 법인세 환급금 1800억원이 이번 실적에 반영됐다. 국세청은 2003년 국민은행의 국민카드 합병 과정에서 "대손충당금을 과도하게 쌓아 이익을 축소했다"며 은행에 4121억원의 법인세를 부과한 바 있다. 국민은행은 과세가 부당하다며 2010년 소송을 제기했고, 올 1월 대법원은 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이 밖에 국민카드가 순이익 98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9% 성장했고 KB캐피탈이 171억원(전년 동기 대비 368.7% 증가), KB투자증권이 118억원(295%) 등 골고루 호성적을 냈다. 최진석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KB금융의 1분기 실적은 일회성 요인이 크지만 회사로서는 가장 중요했던 '안정'을 되찾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신한·하나, 비은행 계열사 덕에 체면치레

신한금융지주는 비은행 계열사들의 선전으로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신한은행의 당기순익은 3899억원으로 국민은행(4762억원)에 뒤졌으며 전년 동기와 비교해도 8.3% 줄었다. 경남기업 등 부실 기업들에 대한 대손충당금 전입액을 전년 동기보다 4배 가까이 많은 2127억원이나 쌓은 것이 수익 감소로 이어졌다.

신한의 체면을 살려준 것은 비은행 부문이다. 1분기 비은행 부문의 당기순익은 2577억원으로 신한금융지주 전체 당기순익 중 39.6%(지분율 감안 후 당기순익 기준)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도 23.8% 증가했다. 신한카드는 전년 동기 대비 9.5% 상승한 1545억원, 신한생명은 48% 증가한 323억원을 기록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증시 호황에 힘입어 82.8% 증가한 488억원의 순익을 냈다. 한정태 하나대투증권 연구실장은 "저금리 시대에는 채권 가격이 상승하고 투자형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비이자(수수료) 수익이나 금융상품 판매 수익이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지주에서 비은행 부문의 중요성도 그만큼 더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하나은행의 당기순익(2608억원)은 전년 동기보다 7.0% 줄었지만 비은행 5개 자회사 순익(654억원)이 1년 전보다 93.5% 늘었다.

우리은행은 1분기 당기순익(2908억원)이 전년 동기보다 30.5% 증가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내실이 빈약한 성적표다. 삼성자동차 부채 관련 위약금 소송에 이기면서 발생한 일회성 이익(1319억원)이 전체 순익의 절반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구경회 현대증권 연구원은 "10년 끌어온 소송 금액 돌려받은 것을 감안하면 순익이 더 낮은 다른 은행들에 비해 좋은 성적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4대 금융그룹이 2분기에도 호성적을 이어갈지는 불투명하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통상적으로 충당금 부담이 적은 1분기에 실적이 좋았다가 2분기에 고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