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조선업계가 '수주 가뭄'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국 조선 기업들이 대반격에 나섰다.

한국은 지난달 CGT(표준환산톤수·건조 난이도를 고려한 선박의 무게) 기준으로 글로벌 선박 발주 물량 가운데 74%를 수주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세계 시장에서 수주 점유율은 50%에 육박한다. 최근 3년간 중국 공세에 밀려온 한국 조선업체들이 반전(反轉)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조선업계, 지난달 수주 싹쓸이

현대중공업그룹은 계열사인 삼호중공업 수주 물량을 포함해 지난달에만 15척의 상선(商船)을 수주했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업계의 지난달 수주량은 49척의 전 세계 물량 가운데 22척으로 점유율 45%에 달한다.

하지만 CGT 기준 점유율로 환산하면 74%(134만CGT 중 99만CGT)로 치솟는다. 지난해 척수 기준 점유율 16.4%(1953척 중 321척), CGT 기준 점유율 29.7%(4240만CGT 중 1260만CGT)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점유율이 상승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CGT 기준 점유율은 올 2월부터 3개월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 업계의 대반전은 최근 세계 시장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 VLCC(초대형 유조선), LNG선(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중심으로 선박 발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형 선박 건조에 특화한 한국 대형 조선업체들이 이 물량들을 사실상 '싹쓸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주력 선종(船種)인 중소형 벌크선(화물 운반선) 발주가 사실상 끊기면서 지난달 수주 점유율이 각각 1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원자재 가격 하락 여파로 전 세계 벌크선 발주량은 2013년 1252척, 지난해 724척에서 올 들어 4개월 동안 23척으로 급감했다.

특히 중소 조선소의 벌크선 건조를 바탕으로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던 중국은 올 들어 벌크선 수주 부진으로 점유율이 3위로 추락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2013년과 지난해 선박 운임(運賃) 상승을 예상한 투기적 수요가 가세해 벌크선 발주가 비정상적으로 늘었지만 화물 운임이 바닥권에 머무르고 있어 벌크선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은 당분간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소들 줄도산 여파 주목

벌크선 수주 급감 여파로 중국 조선사들의 실적이 악화된 것도 중요 변수(變數)이다. 2010년 초 3000여개이던 중국 조선 기업체는 현재 100여개로 줄었다. 중국 정부가 상선 대신 해양 플랜트 사업 육성을 위해 국영 조선소 위주로 재편 방침을 정함에 따라 향후 부실한 민영 조선소의 퇴출(退出)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2005년 출범해 한때 중국 최대 민영 조선소였다가 폐업 위기에 몰린 룽성(熔盛)중공업이 이를 상징한다. 룽성은 2011년에 종업원 3만명에 3조원대의 매출을 올렸으나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로 2012년부터 매출이 급감했으며 지난해엔 2~3년 전 따낸 수주 계약이 잇따라 취소돼 치명상을 입었다. 중국 민영 조선 기업인 양쯔장조선소의 런위안린(任元林) 회장은 "중소 조선 기업들의 연쇄 퇴출로 중국 조선업계는 2~3년 뒤에는 20~30개의 대형사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중소형 조선사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형 조선소인 성동조선소SPP조선은 지난달 일부 채권은행의 자금 지원 반대로 앞으로 추가 수주 활동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박무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과거 발전·중장비 등 중공업 업종도 불황을 거치면서 소수 업체만 살아남는 과정을 겪었다"며 "조선업도 대형업체만 살아남는 격변의 시기가 시작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