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트 비어펍을 찾아서] 동대문 과르네리 탭하우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과르네리 탭하우스’의 탭 핸들(생맥주 뽑는 손잡이) 일부. 이 크래프트 비어펍에는 총 80여개가 넘는 탭이 설치돼 있다.

과르네리(Guarneri)는 17~18세기 이탈리아에서 현악기로 이름을 떨쳤던 가문 이름이다. 20세기 바이올린의 황제 ‘야샤 하이페츠(Heifetz)’와 장영주가 과르네리의 바이올린을 썼고, 요요마는 과르네리의 첼로를 연주한다.

과르네리는 종종 현악기의 장인으로 알려진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비교된다. 대중들에게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다소 나긋나긋한 소리를 내는 반면, 과르네리는 박력있고 묵직한 소리를 들려주는 걸로 유명하다.

“크래프트 맥주만 낼 수 있는 진득한 맛이, 과르네리가 내는 웅장한 소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죠.”

29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난 장창훈 과르네리 탭하우스 대표가 말했다. 장창훈 대표는 국내 하우스 맥주업계에서 10년 이상 경험을 쌓은 ‘국내 하우스 맥주 1세대'다.

그는 2004년 서울 강남역에 하우스 맥주 전문점 ‘헤르젠’을 열었다. 하우스 맥주란 따로 양조장을 두지 않고, 매장 내에 양조 설비를 갖춘 상태로 만든 맥주를 말한다. 그는 여기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2014년 3월 DDP 개장과 함께 과르네리 탭하우스를 선보였다.

장창훈 과르네리 탭하우스 대표가 다음달 출시 예정인 자체 브랜드 ‘과르네리’ 병맥주를 들고 자세를 취했다.

DDP 디자인 장터 한 가운데 문을 연 과르네리 탭하우스에 들어서면 일단 눈 앞에 펼쳐지는 탭(생맥주) 수에 놀란다. 한쪽 벽면에 빼곡히 도열한 80개가 넘는 탭 핸들(생맥주를 뽑는 손잡이)은 그 자체로 시선을 빼앗는다. 다른 경쟁 펍들에선 본 적이 없는 광경이다.

화려한 탭 뒤편으로는 맥주들을 보관하는 큼직한 냉장고가 마련돼 있다.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차가운 냉기가 몸을 감싼다. 온도계는 영상 1도씨를 가리켰다. 냉장고는 미국, 독일, 벨기에 등지에서 온 맥주 케그(keg·맥주를 저장하는 작은 통)와 장앤크래프트 브루어리 케그로 가득했다.

모두 일반 맥줏집에서 잘 취급하지 않는 ‘크래프트 맥주’다. 그는 “갯수를 늘리려고 대중적인 브랜드들을 섭외하진 않았다”며 “브루마스터(맥주 양조 책임자)가 선별한 맥주들만 엄선했다”고 말했다.

탭은 80개가 넘지만, 실제 메뉴에는 자체 브랜드 ‘장앤크래프트 브루어리’ 맥주 6종류를 포함해 총 30여개 정도가 올라와 있다.

장앤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장창훈 대표가 전라북도 순창에 지은 국내 최대 규모의 크래프트 맥주 공장이다. 이 공장의 연간 생산량은 5000킬로리터(㎘) 수준이다. 일반 소규모 브루어리보다 최대 50배 정도 큰 양조장인 셈이다.

장창훈 대표는 “올해 중에 장앤크래프트 브루어리 자체 레시피로 만든 맥주 20여종을 추가할 생각”이라며 “인삼처럼 재밌는 재료를 넣은 실험적인 맥주들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과르네리 탭하우스의 냉장고는 규모에서 다른 경쟁 크래프트 비어펍의 냉장고를 압도한다. 이 곳은 항시 영상 1도로 유지된다.

이 공장은 독일의 세계적인 맥주 설비업체 카스파 슐츠(Kaspar Schulz)사의 설비를 도입했다. 맥주 맛의 차이를 빚는 핵심 재료인 효모도 직접 배양해 쓴다. 맥주 양조는 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장인 차보윤씨가 총괄한다. 현재 장앤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맥주 레시피와 생산 공정은 브루마스터인 차보윤 협회장이 담당한다. 장창훈 대표는 맥주가 나오면 품평을 하고, 보완점을 찾는다.

그는 “공장이 커지면 맥주 품질이 일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줄이기 위해 최고의 설비와 저명한 전문가를 불러 들였다”며 “여기에 독일산 바이어만(Weyermann) 맥아처럼 고급 재료를 쓰면 맛을 거의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르네리 탭하우스에서는 현재 자체 레시피로 만든 크래프트 맥주 6가지를 판매한다. 목넘김이 편한 마시기 쉬운 라거(lager·하면발효) ‘필스너 체코’, 너도 밤나무를 땔감으로 핀 연기에 맥아를 그을려 맥주에서 훈연한 향이 나는 ‘라우크비어 밤베르크’, 영국식 흑맥주 ‘스위트 스타우트’, 아일랜드식 에일(ale·상면발효) ‘레드 에일 아이리시’, 인디아 페일에일 ‘IPA 순창’, 밀 맥주 ‘헤페 바이젠’ 등 6종이다.

이 중 라우크비어 밤베르크는 국내 크래프트 비어펍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맥주다. 자체 레시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훈연 맥주로선 유일하다. 공정이 복잡한 만큼, 맥주가 갖는 풍미도 독특하다. 훈연한 베이컨에서나 맡아볼 법한 기분 좋은 나무향이 맥주 홉(hop)에서 나오는 허브향과 뒤섞여 긴 여운으로 남는다.

밀이 들어간 헤페 바이젠은 올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여러 밀 맥주 중에서도 특히 완성도가 높다는 뜻이다.

장창훈 대표는 “한국에선 밀이 들어간 바이젠이 ‘노인, 여자들이 마시는 맥주’라고 천대받는 경향이 있지만, 독일에선 대중들이 가장 쉽게 즐기는 맥주”라며 “다른 맥주들은 홉향으로 본연의 맛을 가릴 수 있지만, 바이젠은 그런 기교를 부리기가 어려워 맥주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 가장 쉽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5월 초 대형마트 등에서 판매 예정인 과르네리 브랜드 병맥주. 병맥주 가격은 4000~5000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장앤크래프트 브루어리는 다음달 초 자신의 이름을 건 병맥주를 이마트 등 대형마트에 선보인다. 동대문에서만 맛볼 수 있던 생맥주 맛을 그대로 집에서도 느낄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다. 과르네리 탭하우스, 장앤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성장하려면 일단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는 소비자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 장창훈 대표의 전략이다.

그는 “‘과르네리’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판매될 이 병맥주는 효모를 살균하지 않아 생맥주와 거의 유사한 맛을 낸다”며 “효모가 병 속에서 변질되지 않도록 냉장유통 체계를 확실하게 구축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전체 맥주 시장에서 과르네리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0.27% 수준이지만, 2017년 말에 순창에 제2공장이 문을 열면 국내 맥주 시장에서 ‘과르네리’ 맥주가 2.5%를 차지할 겁니다. 대형 제조업체들과 본격적인 승부는 그 때부터 시작입니다. 지금은 조용히 사람들에게 크래프트 맥주 맛을 보여줄 때지요.”

과르네리 탭하우스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1층 ‘디자인 장터’ 섹션에 있다. 주소는 서울시 중구 산림동 281, 전화번호는 02-2153-077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