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삼성전자의 아이디어 공유 플랫폼 '모자이크(MOSAIC)'에 토론 주제가 하나 올라왔다. '우리 회사가 IT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는 주제였다. 토론 챔피언(주관자)은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삼성전자 국내 임직원 10만여명 중 7만여명이 호응했다. 댓글이 아닌 새로운 제안만 1000개가 넘었다. 삼성전자는 여기서 18개의 제안을 따로 추려 실천으로 옮길 액션플랜(action plan)'으로 선정했다.

3개월 후인 지난해 10월. 삼성전자는 20년간 써온 문서 작성 프로그램 '훈민정음'을 더는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훈민정음은 부족한 호환성과 기능 때문에 삼성전자의 정체된 소프트웨어 문화를 상징한다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회사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웹오피스 'MS오피스365'를 업무에 쓰기로 했다.
모자이크에 협업을 위해 훈민정음을 대체할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자는 제안이 올라왔고, 그 제안이 공감을 얻어 실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삼성전자의 사내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칸막이와 수직구조에서 벗어나 '소통'과 '협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달 개설 1주년을 맞은 모자이크는 사업 아이디어 제안부터, 전사 차원의 대토론, 네이버 '지식인'과 같은 지식 제공 서비스, 오프라인 모임 연계, 사내 전문가 검색 기능까지.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아이디어를 연결해 회사의 새 동력을 찾고 있다.

모자이크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는 창의개발센터 집단지성사무국의 강윤경 부장은 “올해 3월까지 모자이크의 페이지뷰(page view)는 2871만여 건, 크고 작은 제안과 게시글 수는 15만 건을 넘어섰고 특허는 61건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3월 미국 오스틴에서 열린 SXSW에서 삼성전자 'Jamit'의 팀원들이 쉬운 바이올린 연주법을 관람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 "사람과 아이디어 연결"…모자이크 어떻게 짰나

모자이크는 집단지성의 여러가지 기능을 한 데로 모은 플랫폼이다.

UI(유저 인터페이스)는 흔히 보는 웹사이트와 비슷하고 삼성의 인트라넷 ‘싱글'처럼 작동한다. 하지만 모자이크는 ‘싱글'과 달리 쿼키, 웹오피스 등 집단지성및 협업 원리에 기반한 솔루션으로 구성돼 있다.

모자이크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기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제 사업으로 이어주는 '아이디어 마켓'이다. 한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면, 다른 전문 분야의 직원들이 공동 참여를 제안하는 식으로 협업이 이뤄진다.

모자이크의 아이디어 마켓은 쿼키 모델에서 따왔다. 쿼키는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팔고, 매출의 일부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과 심사위원에게 나눠주는 서비스다.

문서는 공동 편집이 가능하도록 MS오피스360을 기반으로 한 ‘모자이크 닥스’로 작성한다.

이 밖에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와 같이 누구나 묻고 답하는 '퀘스천즈', 오프라인 모임 연계 기능인 '스퀘어', 분야별 임직원 전문가 검색 기능을 갖춘 '휴먼 라이브러리' 등이다. 임직원 대토론회처럼 짧은 기간 내 전사적으로 한 주제를 두고 토론하는 건 '스파크'다.

게시판, 일정관리 등의 온라인 업무 도구들을 팀별로 레고 블럭처럼 원하는 것만 가져다 쓸 수 있다.

삼성전자 측은 위키(Wiki·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어 등에서 쓰는 하이퍼텍스트 방식의 협업 문서 제작 방식)와 같은 방식은 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올해 3월에는 새로운 서비스 '모자이크 스토어'가 가세했다. 모자이크 스토어는 개발자들이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과 같은 프로젝트를 다른 임직원에게 공개하고 평가, 검증받는 공간이다.

◆ "집단지성 성공의 핵심은 동기부여"

사실 모자이크는 새삼스러운 플랫폼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2006년부터 모자이크와 유사한 지식경영 시스템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최고경영진들은 지난해부터 집단지성 활성화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집단지성 구축의 2가지 큰 전제 조건인 네트워킹 환경을 지식경영 시스템으로 다져놨고,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성인인 10만명의 임직원도 갖췄다는 판단에서다.

집단지성은 기획과 운영을 적절하게 했을 때만 효율을 낸다. 집단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기존의 지식경영 시스템은 이런 점에서 큰 호응을 이끌지 못했다. 아이디어를 올려도 다른 직원들이 조회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모자이크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인센티브'를 마련했다.

첫째 인센티브는 '재미'였다. 임직원들은 아이디어 마켓에 올라온 아이디어를 각자가 보유한 '코인'으로 투표한다. 모자이크 내에서만 쓰이는 가상 화폐다. 한 아이디어가 일정 수의 코인을 받아 1차 평가를 통과하면 제안자와 투표자들은 코인의 수익을 나눠 갖는다. 회사는 코인을 상품권과 같은 실물로 보상한다.

강윤경 부장은 "투자를 하듯이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방식이 흥미를 유발했다"며 "이를 통해 임직원들은 수많은 아이디어들 중에서 옥석을 스스로 가려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 부장은 금전적인 보상이 동기부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는 "모자이크가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참여를 통해 실제로 회사의 변화에 기여를 한다는 점을 직원들이 느끼게 해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경영진들은 사내 방송을 통해 모자이크에서 추려낸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겠다고 공표해 직원과의 신뢰를 쌓았다. 최고경영진이나 임원들이 직접 댓글로 질문에 답을 하거나 아이디어에 피드백하는 경우도 많았다.

김상헌 무선사업부 책임은 "업무와 관련해 궁금한 사항을 스파크 토론 주제로 올려 임직원의 피드백을 들은 적이 있다"며 "그 결과를 검토해 실제 개발 회의에 반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고의사결정자가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고 끝까지 실행에 옮기면서 모자이크에 더욱 힘이 실렸다는 것이다.

◆ 올해 해외 임직원까지 확대...영문 모자이크 버전도 나와

삼성전자는 올해 모자이크의 적용 범위를 20만여 명의 해외 임직원에게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영문으로 제공되는 모자이크 글로벌 버전은 올 3월 문을 열었고, 해외 연구소와 관계사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비전2020'을 주제로 글로벌 대토론회를 진행했다. 회사의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세계 곳곳에 있는 직원들의 다양한 제안을 수렴했다.

강윤경 부장은 "해외 법인과 연구소마다의 특징을 잘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지역에 특화된 토픽과 공모전을 자율적으로 진행하면 사무국에서 조정자(moderator)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방침이다"고 했다 .

강 부장은 "지난해는 모자이크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게 중론이다"며 "올해는 집단지성을 더욱 실무에 녹일 수 있도록 사내 컨설팅을 강화할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