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트 비어펍을 찾아서] 서울 청담동 ‘스코파 더 쉐프’

‘산티노 소르티노(Santino Sortino·46)’.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인 주방장을 꼽으라면 이 이름을 그냥 지나치긴 어렵다. 소르티노 주방장 본인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더라도, 그나 그 수제자가 만든 음식을 먹어 봤거나 그가 운영하는 음식점 앞을 지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소르티노 주방장은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으로 2002년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롯데호텔 페닌슐라 주방장을 거쳐 이태원에 ‘소르티노스(Sortino’s)’, 신사동에 ‘그라노(Grano)’ 등 이탈리아 음식점을 세우고 직접 요리를 했다.

이 음식점에서 내놓는 투박하고 짠 맛이 강한 남부 이탈리아식(式) 음식들은 지금도 국내 이탈리아 음식업계에서 한 축을 담당한다. 소르티노 주방장에게 가르침을 받은 수제자들 역시 연희동과 서촌 일대에서 줄줄이 이탈리아 음식점을 열었다.

‘스코파 더 쉐프(Scopa the chef)’는 소르티노 주방장이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새로 선보인 이탈리아 음식점이자, 크래프트 맥주·와인 전문점이다. 이 곳에선 이탈리아식 정찬을 내기보다, 술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단품 요리를 주로 낸다. 내부는 얼핏 보면 맥주보다는 자연스럽게 와인이 연상되는 분위기다.

산티노 소르티노(Santino Sortino·46) 주방장이 23일 서울 청담동 스코파 더 쉐프에서 미션 스프링스 브루어리의 맥주를 들고 익살스런 자세를 취했다.

“실제로 주류(酒類) 메뉴판을 보면 맥주보다 와인이 많긴 합니다. 그래도 이 음식점은 맥주가 핵심이에요.”

24일 스코파 더 쉐프에서 만난 소르티노 주방장은 “원래 크래프트 맥주펍으로 운영하던 매장을 3개월 전부터 이탈리아 음식점으로 바꿨다”며 “청담동이라는 지역에 맞춰 이런 저런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스코파 더 쉐프는 올해 1월까지 ‘더스프링스탭하우스 청담점’이란 크래프트 비어펍이었다. 더스프링스탭하우스는 이태원과 경리단길에 지점이 있는 미국식 개스트로 펍(gastro pub· 근사한 음식을 내는 펍)이다. 이 펍은 캐나다에서 자란 소르티노 주방장이 메뉴 개발에 참여해 유명세를 탔다.

반면 스코파 더 쉐프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보이는 펍이라기 보단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는 ‘트라토리아(Trattoria·지방 특산물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식당)’에 가깝다. 소르티노 주방장은 여기선 단순히 개발에 참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앞선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그랬듯 직접 조리를 한다. 그는 맥주와 와인에 맞춰 1년에 두번씩 메뉴를 완전히 새롭게 바꿀 계획이다.

“처음에 메뉴를 짜면서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들을 개발하는 데 신경 썼어요. 이전에 와인과 음식을 맞춰 본(pairing) 경험이 많아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국산 사슴 고기나, 질 좋은 소 볼 부위(beef cheek)같은 좋은 재료 구하기가 어렵더군요.”

스코파 더 쉐프 내부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보이는 펍이라기 보단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는 ‘트라토리아(Trattoria·지방 특산물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식당)’에 가깝다.

스코파 더 쉐프에선 모두 4종류의 맥주를 판다. 맥주는 전부 캐나다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 ‘미션 스프링스 브루어리(Mission Spring brewery)’에서 만든 맥주들이다. 다른 국내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만든 맥주나, 외국산 크래프트 병맥주는 취급하지 않는다.

보통 다른 크래프트 비어펍들이 자신의 레시피로 만든 맥주와 해외 병맥주를 합쳐 최소 10여종, 많게는 20~30여종을 갖춘 점을 감안하면 선택권이 많지 않은 편이다. 소르티노 주방장에게 그 이유를 묻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미션 스프링스 브루어리는 캐나다 브리티쉬 콜럼비아주(州)에서 저희 아버지가 직접 운영하는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니까요.”

소르티노 주방장의 의붓아버지 브록 로저스(Brock Rodgers) 미션 스프링스 브루어리 대표는 1988년 캐나다 서부 ‘미션(Mission)’이란 도시에 미션 스프링스 브루어리를 세웠다. 2013년 한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붐이 불기 시작했던 것처럼, 막 북미권에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수요가 생겨날 즈음이었다. 로저스 대표는 직접 맥주별 레시피를 만들고, 양조를 시작했다. 설립 당시 그리 크지 않았던 브루어리는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점차 규모가 커졌다.

소르티노 주방장은 “아버지가 얼마 전엔 60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만큼 큰 브루펍(brewpub·맥주를 직접 빚어 파는 펍)도 열었다”며 “한 해에 2~3번 캐나다를 방문하곤 하는데, 그 때마다 브루어리에 들러 직접 맥주 만드는 일을 돕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션 스프링스 브루어리가 커지자 2010년 이후 3년간 캐나다를 방문할 때마다 로저스 대표에게 ‘한국에서도 크래프트 맥주를 팔자’고 졸랐다. 소르티노 주방장은 “아버지는 맥주를 만들 줄 알고, 나는 요리를 할 줄 아니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이 어딨겠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소르티노 주방장은 스스로 직접 미션 스프링스 브루어리에 투자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맥주를 보내려면 그에 맞는 설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허락은 받았는데,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맥주를 보내는 일이 골칫거리였습니다. 일반 알루미늄 케그(keg·맥주를 저장하는 작은 통)를 사용하자니, 한국으로 배송된 빈 케그를 다시 캐나다로 돌려보내는 돈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키 케그(key keg)’라는 일회용 케그를 사용하기로 했죠.”

키 케그는 내구성이 좋고, 바깥 기온과 상관없이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줘 맥주 맛이 변질되는 상황을 막아준다. 그러나 일회용 케그인만큼 가격이 비싸고, 공급이 한정적인 점이 흠이다. 키 케그로 들어온 맥주는 보통 2~3주 안에 전부 팔리고, 빈 케그는 폐기된다.

스코파 더 쉐프에는 총 4개의 생맥주 서빙용 탭이 설치돼 있다. 탭 위의 사진은 소르티노 주방장(오른쪽) 본인과 그의 친아버지 카르멜로 소르티노(왼쪽)다. 미션 스프링스 브루어리를 세운 브록 로저스는 소르티노 주방장의 의붓아버지다.

이 곳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는 ‘스트롱맨’이다. 이 맥주는 호주산(産) 갤럭시 홉으로 만든 향이 진한 에일(ale·상면발효)맥주다. 알콜 도수도 8도로, 맥주 치고 높은 편이다. 섬세하고 균형감이 좋은 타입이라기 보단, 묵직하고 거친 곡물 그 자체의 향을 강조했다. 마치 소르티노의 시칠리아식 음식을 닮았다.

소르티노 주방장 역시 “미션 스프링스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맥주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맥주”라며 “진하게 올라오는 파인애플 향과 가죽향이 풍부하다”고 평가했다.

여름에는 조금 더 편하게 마실 수 있는 필스너 계열 맥주가 인기다. ‘트레일블레이저’는 알콜도수가 4.5도인 라거(lager·하면발효) 맥주다. 허브향과 상쾌한 풀잎향이 나는 금색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면 보리차와 같은 구수한 내음이 올라온다. 홉의 향과 느낌을 살리기 힘든 라거 임에도 여느 맥주보다 깊이감이 느껴진다.

소르티노 주방장은 “이 맥주는 2014년 9월 캐나다에서 가장 권위있는 맥주대회 ‘캐나다 브루잉 어워드(The Canadian Brewing Awards)’에서 금메달을 받았다”며 “스트롱맨을 가장 좋아하지만, 7~8월 두 달간은 이 맥주를 더 자주 마신다”고 말했다.

그는 이 두 맥주에 각각 ‘5시간 동안 졸인 쇠고기 볼살에 토마토와 모짜넬라 치즈 등을 곁들인 샐러드’, ‘송로버섯 기름을 뿌린 감자튀김'을 권했다.

소르티노 주방장은 “일부 손님들은 이런 메뉴를 권하면 ‘맥주에 너무 과분한 음식이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사실 잘 만든 맥주는 와인만큼 다양하고 미묘한 향을 가진다”며 “좋은 맥주에는 좋은 음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음식점을 연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코파 더 쉐프에선 이 밖에도 통나무통에서 6개월간 숙성시킨 맥주 ‘체리밤’과 진한 커피향이 매력적인 오트밀 스타우트 맥주 ‘팻 가이’ 등을 판다.

소르티노 주방장은 앞으로 미션 스프링스 브루어리의 맥주를 국내에 더 널리 퍼뜨릴 계획이다. 올해 중에는 부산과 서울 다른 지역에 새로운 형태의 펍을 선보일 계획이다.

“저는 요리를 하는 그 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exciting). 그리고 요리를 마치고 펍에서 맥주를 마실 때에는 행복(happy)함을 느낍니다. 저는 제가 즐겁게 만든 요리와 저희 아버지가 만든 맥주를 여러분이 행복하게 먹고 마시길 바랍니다.”

청담동 스코파 더 쉐프는 유명 연예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 바로 옆에 있다. 주소는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23-53 2층, 전화번호는 070-8828-7717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