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부패 스캔들의 작동 원리도 마찬가지다. 권력과 돈이 만나 사달이 난다. 특권을 쥔 부정(不正)한 정치인과 관료, 돈을 주고 특혜를 바라는 부도덕한 기업인이 늘 주연으로 등장한다. 온나라를 소용돌이로 밀어넣은 성완종 게이트야 말로 그 전형(典形)이다.

총리, 청와대 전현직 비서실장 등 박근혜 정권의 실세 정치인들이 무더기로 부패 의혹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년이 된 4월에 또다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막장의 기운이 감돈다.

주연들은 바뀌지만 부패 스캔들은 죄다 ‘판박이’다. ‘실세 정치인, 특혜, 외압, 횡령, 분식회계, 비자금…’ 멀게는 노태우 정권 시절 수서 비리부터 가깝게는 이명박 정권 시절 방위산업, 해외자원개발 비리 의혹까지. 매번 봐왔던 광경이 눈 앞에서 다시 펼쳐진다.

“목숨까지 내놓겠다”며 금품 수수 의혹을 부인하던 정치인 이완구 총리는 자신의 발언과 다른 정황 증거들이 계속 나오자 말바꾸기 논란 끝에 사퇴했다. 총리 취임 63일 만이었다. 취임 직후 ‘부정부패와 전쟁’을 선포했던 총리가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으니 아이러니를 넘어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김기춘 홍준표 허태열 등 친박계(친박근혜계 정치인) 실세들도 정조준된 과녁안에 들어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여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도 자유롭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12월 성완종 전 회장을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시킨 것을 두고 새누리당과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경남기업의 세번째 워크아웃 승인 과정에서 고(故) 성완종 전 회장에 특혜를 주도록 시중은행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각 조각 드러나는 성완종 전 회장의 기업 사금고화도 과거 부패 스캔들 사례와 다르지 않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1조원대 사기, 횡령, 분식회계 혐의를 받고 있다.

정권이 교체되면 쳇바퀴 처럼 터지는 부패 스캔들은 금권 정치, 관치 금융, 오너들의 기업 사금고화 등 사회 곳곳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제부터 안주고 안받고 안봐주는 겁니다’라고 모두 약속하고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고장난 사회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고쳐나가는 수 밖에 없다. 권력과 돈의 손바닥이 마주치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파렴치한 정치인은 물론 부도덕한 기업인이 이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게 기본 원칙이다. 정치와 비즈니스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넘나들었던 성완종 게이트에서 드러났듯이 우리 사회의 기업 사금고화는 여전히 만연해 있다. 특히 감독 사각지대인 비상장사를 악용해 일감몰아주기, 가공매출, 대여금 등 각종 불법과 편법으로 돈을 빼내가는 수법이 횡행하고 있다.

일례로 성완종 전 회장은 자신이 소유한 비상장사 대아레저산업에서 일명 주임종(주주·임원·종업원) 대여금 명목으로 50억원대의 돈을 가져갔다. 대아레저산업 감사보고서의 재무상태표와 주석을 보면 성 전 회장의 단기대여금(잔액기준)은 2008년말 24억원, 2009년말 36억원, 2010년말 63억원, 2011년말 59억원, 2012년말 54억원을 끝으로 사라진다.

성 전 회장이 갚지 않아도 되도록 대손충당금으로 손실 처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역시 비상장사인 대아건설과 대원건설산업에서도 같은 수법으로 100억원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장사 악용은 성 전 회장 만의 문제는 아니다. 감독 무풍지대의 틈을 이용해 비상장사에서 횡령, 분식회계 등 불법과 탈법이 판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장사를 강도높게 감독하더라도 부도덕한 기업 오너를 솎아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제2, 제3의 성완종 게이트는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환경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이사회가 제기능을 하는지 감시하는 내부 감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 정도의 사달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비상장사의 감사시스템 등 견제 기능을 강화하더라도 한계는 뚜렷하다. 비상장사의 이사진은 오너의 친인척이나 최측근으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 감사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방법은 횡령, 분식회계, 조가조작 등을 저지른 오너나 경영진에 대해선 일벌백계(一罰百戒)하는 수 밖에 없다. 중대 범죄에 대해선 사회에 끼친 유무형 손해 보다 훨씬 더 많은 수준의 징벌적 처벌을 내려야 한다. 정치인과 관료도 마찬가지다. 솜방망이 처벌은 더이상 안된다. 이른바 ‘시장적 징벌 시스템’이 작동하게 해야 한다. 매번 말로만 할 게 아니라 패가망신하는 꼴을 실제로 보여줘야 한다.

성완종 게이트에서 입증됐듯이 부패 스캔들은 관련 기업을 파탄으로 몰아 협력업체와 주주, 종업원, 채권은행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횡령, 분식회계, 주가조작 등이 터질 때 마다 협력업체와 일반 주주 등이 뒷감당하는 구조라면 대한민국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