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크레이그 사피로 콜라보레이티브펀드 대표가 카우앤독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7시. 서울 성수동 공장지대에 위치한 벤처지원공간 ‘카우앤독’ 2층 홀에서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주제는 벤처기업과 사회혁신.

크라우드 펀딩업체 ‘킥스타터’,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리프트(Lyft) 등 혁신 기업에 투자해온 크레이그 사피로(Craig Shapiro) 콜라보레이티브펀드(Collaborative Fund) 대표의 강연이 끝나기 무섭게 참석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소셜 벤처가 추구하는 이상과 실제 현실의 괴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실패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크레이그 사피로 콜라보레이티브펀드 대표 강연에 함께한 참석자가 질문을 하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쏘카’ 직원, 미아방지 팔찌를 만드는 스타트업 ‘리니어블’ 관계자, 소셜 벤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이재웅 다음 창업자 등 이날 토론에 함께 한 40여명의 참가자들은 모두 소셜 벤처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다. 단순 창업이 아닌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벤처’를 꿈꾸는 모임이다.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된 토론은 밤 9시까지 계속됐다.

벽면에 함께 일하고, 좋은 일을 하자(Co-Working & Do Good)’라고 써있다.

카우앤독(CoW&DoG)은 ‘소셜벤처’라는 뚜렷한 색깔을 내세운다. 이름부터 ‘함께 일하고, 좋은 일을 하자(Co-Working & Do Good)’는 뜻이다. ‘개나 소나(cow&dog)’ 자유롭게 와서 일하되, 창업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도록 돕는다. 소셜벤처 투자 업체인 소풍(Sopoong)이 지은 건물로 지난 1월에 오픈했다.

사회혁신 토론 전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샌드위치.

◆ 소셜 벤처 둥지

소풍은 소셜벤처에 투자하고 투자한 업체를 인큐베이팅(보육) 하는 업체다. 현재 12곳의 소셜벤처에 투자한 후 인큐베이팅을 진행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투자 업체가 쏘카, 크라우드 펀딩 업체 텀블벅 등이다.

카우앤독 외관.

카우앤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소셜벤처 허브를 지향하고 있다. 1층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카페 형태의 협업공간과 사물함이 마련돼 있고, 2층은 외부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홀과 예약 후 사용할 수 있는 회의공간이 마련돼 있다. 소셜벤처 관련 행사를 주로 개최하다보니 1층 협업공간에도 주로 소셜벤처 창업 지망생들이 모인다고 한다.

1층 협업공간.

투자한 기업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3층과 4층 입주공간도 마찬가지다. 각각 쏘카와 공간 공유 업체 앤스페이스(nspace)가 입주해 있다. 김정주 NXC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이재웅 다음 창업자 등 국내 벤처 1세대 대표주자들이 만든 벤처자선 기관 ‘C프로그램’도 카우앤독의 입주사다.

2층 회의실.

공간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카우앤독 모바일 앱을 통해 회원 가입을 하면 카페 음료를 50%가량 할인 받을 수 있고, 와이파이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모바일 앱으로 회의실도 예약해 사용할 수 있다. 회원 가입 비용도 무료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회의실

공간의 구조 자체도 열린 형태다. 천장을 높이 설계해 1층과 2층의 경계를 없앴고, 건물 전면부는 통유리로 만들어 밖에서도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1층에 마련된 협업 공간 테이블 역시 칸막이가 없는 형태로 5~6명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돼있다.

1층과 2층이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 성수동 밸리 시너지

강남 테헤란로가 일반 벤처 밸리라면, 성수동은 소셜 벤처 밸리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카우앤독 외에도 근처에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 벤처가 속속 들어오는 추세다.

디웰 살롱공간.

지난해 11월 성수동에 오픈한 ‘디웰’이 대표적이다. 디웰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손자인 정경선(29) 루트임팩트 대표가 만든 공동주거시설이다. 농산물 유통업체인 생생농업유통 무료 법률자문 소셜벤처인 로앤컴퍼니 등이 입주해 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도시숲 운동), 점프(고등학생 멘토링)와 같은 비영리기관과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공신닷컴과 같은 사회적 기업도 성수동에 위치하고 있다.

비영리기관,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 등이 서로 협력하는 사례도 하나 둘 나오고 있다. 최근 카우앤독이 개최한 네트워킹 행사에 텀블벅, 21세기자막단(사회적기업), 모두를 위한 극장(공정영화협동조합)이 참여했는데, 네트워킹을 통한 협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텀블벅에서 펀딩을 받고 21세기자막단이 자막을, 모두를 위한 극장이 배급을 맡아 협업하는 형태다.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가 혁신적인 투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카우앤독에서 실시하고 있는 네트워킹 프로그램 역시 사회적 가치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 텀블벅을 통해 자금을 모아 만들어진 독립영화를 상영하거나 엔젤투자가인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 등과 함께 사회 혁신 투자 대담을 진행하는 식이다. 1987년에 개최된 베를린 국제건축전시회를 주제로 도시재생 세미나를 열기도 하고, 시민이 모여 지역사회 문제를 풀어내자는 사회 운동인 ‘시민해킹(Civic hacking)’을 주제로 코딩(coding) 모임이 진행되기도 했다.

◆ 임준우 소풍 대표 “소셜 벤처 성장에 기여할 것”

임준우 소풍 대표는 카우앤독을 자유로운 상상력이 발휘되는 소셜벤츠의 허브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오픈해 아직 많이 알려지지 못했지만, 더 많은 소셜 벤처 창업가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임준우 소풍 대표

임 대표는 “사회적 문제를 벤처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회사에서 그치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보다 절박하게, 보다 구체적으로 문제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속도와 효율, 열정이라는 벤처의 방식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며 “소셜 벤처를 사회적 기업이라는 큰 범주에서 볼 수 있겠지만 단순한 고용 창출 개념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벤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 대표는 “쏘카는 차량 공유를 통해 환경오염을 줄이고, 텀블벅은 문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시민들의 후원으로 예술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며 “이런 것들이 저희가 주목하는 사회 문제 해결형 벤처다”라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소셜 벤처 팀들이 모여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면 좋겠다”며 “소셜 벤처들이 더 많아지고 성장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