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휘 지음|제이펍|296쪽|1만6800원

일주일에 1~2번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뉴스나 강연을 통해 들을 때도 있고,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듣는다. 미국 HBO에서 지난해부터 방영 중인 인기 드라마 제목도 ‘실리콘밸리’다.

그곳이 경기도 판교만큼이나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는데도 그렇다. 내 주변에도 실제로 실리콘밸리에 가본 사람은 많지 않다. 더욱이 그곳에 눌러앉아 생활까지 한 사람은 더 적다.

그러니 실리콘밸리에 대한 이미지는 떠올라도 구체적일 수가 없다. 그냥, ‘도전’ ‘젊음’ ‘창의성’ ‘패기’ 같은 단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막연하다.

그래서일까. 실리콘밸리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고 하면 일단 호기심이 발동한다.

저자는 2007년 구글코리아에 입사한 구글러다. 현재는 실리콘밸리 구글 본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한다. 앞서 언급한 ‘눌러앉아 생활까지 한’ 사람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런 그가 썼다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책 내용은 크게 3부로 나뉜다. 실리콘밸리의 탄생 과정과 문화, 그늘 등을 설명한 부분과 저자가 몸담고 있는 구글에 대한 소개를 적은 부분, 저자 개인의 미국생활 적응기를 담은 부분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실리콘밸리의 ‘어두운 면’을 소개한 부분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도 “시중에 나온 실리콘밸리 관련 책 대부분이 이곳의 밝은 면만 보여주고 있다”며 “실리콘밸리가 안고 있는 숙제를 함께 짚어보겠다”고 썼다.

‘숙제’ 중의 하나는 실리콘밸리의 그늘인 ‘소득불평등’ 문제다. 실리콘밸리 역시 막대한 부가 소득 상위 계층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을 떠받쳐온 중산층이 실리콘밸리에서 오히려 힘을 잃고 있다고 전한다.

이 지역에서는 2000~2010년 사이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인구가 62%에서 55%로 줄었다. 시간당 16달러(약 1만7000원)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도 31%에 달한다. 한국으로 치면 비싼 시급이지만, 실리콘밸리의 물가를 고려하면 집세 내기에도 빠듯한 금액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지역 주민과 기업인들 간 갈등도 심상치 않다. 어느 날 구글이 운영하는 통근버스에 벽돌이 날아와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일반 회사의 통근버스가 공공버스 정류소를 사용하는 데 대한 항의 시위였다.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엔지니어도 수난을 겪는다. 이들 집 앞에서는 “감시, 통제, 자동화로 부도덕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비난과 함께 시위가 종종 벌어진다.

이런 실리콘밸리의 묵은 갈등들이 책에 구체적으로 소개된다. 저자는 “독자들과 함께 실리콘밸리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싶다”고 말한다.

풍부한 내용이 담긴 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책 제목에 ‘견문록’이라는 표현으로 독자의 기대 수준을 높인 것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일반적으로 견문록은 저자가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견문(見聞)’을 중심으로 쓰는 글을 말한다.

이 책의 1부에 해당하는 ‘왜 실리콘밸리인가?’ 부분은 내용 대부분이 견문보다는 지식에 가깝다. 실리콘밸리가 과거 과수원으로 유명한 시골 동네였다는 이야기, 휼렛패커드의 탄생 과정에 대한 이야기, 프레더릭 터먼과 윌리엄 쇼클리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 그렇다. 굳이 현지인이 전해주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검색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이어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