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톰슨 지음|이경남 옮김|알키|456쪽|1만6800원

‘내가 뭘 검색하려고 했지’

포털 검색 창에 ‘내가’라는 단어만 입력하면 자동 완성으로 추천되는 검색어다. 황당한 일이지만 꽤 많은 사람이 같은 검색을 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생긴 후 이제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사실 지식’을 확인해볼 수 있게 됐다. 이 기술은 기억 용량에 대한 부담이 있던 인간의 뇌에 가히 혁명이라 할 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동시에 찜찜함도 안긴다. 스마트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인간은 더 멍청해지지 않는가 하는 두려움이다.

캐나다 출신 기술과학 분야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런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의 우려와는 달리, 그는 자신만만하게도 디지털 툴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거는 뭔가. 예전부터 우려는 반복됐지만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소크라테스는 쓰기가 인간의 기억하는 기술을 퇴화시킬 것이라며 걱정했고, 중세 사람들은 인쇄가 정보 과잉이라는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신 기술들에 매번 훌륭히 적응했고 과거의 장점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디지털 기술 특징 여덟 가지를 꼽는다. 완전한 기억, 생각의 공개, 새로운 문해력, 분산 기억, 협업 지능, 디지털 학교, 주변 인식, 연결성이 그것이다.

이어 저자는 이런 특징들이 인간 정신과 어떤 연결 고리를 갖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특성들 덕분에, 일부 비관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의 창의성과 활용 능력은 배가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여덟 가지 특징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협업 지능’에 관한 내용이다. 어릴 적 오락실의 장면을 떠올려 보자. 한 아이가 게임을 시작하면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곤 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효과적으로 게임에서 상대를 공략할 방법을 익히고 에러를 피하기 위한 정보들을 공유했다. 혼자라면 오래 걸렸을 일을 오락실이라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교환한 것이다.

게임회사는 이런 게이머들의 집단 지성을 알아채고 교묘하게 게임 속에 장치를 숨긴다. 예컨대 닌텐도의 슈퍼마리오 게임에선 감추어진 구역을 찾아내면 금화를 퍼 올릴 수 있다든가, 지름길로 안내하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복잡해진 게임도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쉽게 정복할 수 있게 됐다. 동네 오락실에 모여 정보를 공유하던 꼬마들은 물론 이제는 먼 곳에 사는 어른들까지 함께할 수 있는 정보 공유의 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멋진 전략 목록이 완성됐다. 비밀을 파헤치고 정보를 모으는 것 자체를 또 하나의 놀이로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는 뜻이다.

위키피디아도 협업 지능의 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서로 알지 못하는 온라인 속 사람들이 힘을 합쳐 거대한 지식 사전을 완성했다.

코넌 도일의 소설에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인공 셜록 홈스는 “아주 난해한 암호문이나 복잡한 사건이 없인 따분해서 견딜 수 없다. 정신적인 고양을 갈망한다.”고 말한다.

본래부터 인간이 타고난 협업 지능은 더 어려운 문제를 갈구하게 돼 있고, 디지털 툴은 그런 인간의 본능을 해결할 수 있는 광장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비관론자들에게 오히려 반문한다. 위키피디아나 온라인에서 숲을 이룬 수많은 유익한 블로거들, 시민 저널리즘 같은 디지털 경험의 혜택들을 너무 외면하는 것 아니냐고.

이 책은 인간이 디지털 기술과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디지털 시대에 직면한 우리에게 얼마간의 위안을 준다.

하지만 과거에 별문제가 없었으니 미래 전망도 걱정할 것 없다며 긍정적인 면을 나열하는 저자의 낙관론은 마음 한구석의 걱정을 일소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다만, 그동안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니콜라스 카를 위시해 전체적인 논의의 방향이 비관론 쪽으로 기울던 차에 등장한 이런 반론은 앞으로 생산적인 토론을 불러올 것 같아 적잖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