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 화면 위에 두 손가락을 놓고 오므렸다 폈다 하면 사진이 늘었다 줄었다 합니다. 사진을 공간이라고 하고, 손가락의 힘을 중력이라고 합시다. 중력의 힘을 받아 공간이 변하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죠.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에서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중력의 힘을 받아 빠르기가 달라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시간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폈다가 하면 빨라졌다가 늦어졌다가 한다는 논리죠."

20일 서울 광화문 KT올레스퀘어 무대에 포스텍 물리학과 이영익(22)씨가 200여명의 청중 앞에 섰다. 이씨의 발표 주제는 '상대성이론과 시공간의 구조'였다. 주어진 시간은 단 3분. 물리학 전공자들도 이해하기 힘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일반인들에게 3분 동안 설명하기 위해서 이씨는 태블릿PC를 활용했다.

이날 한국과학창의재단 주최로 열린 '2015 페임랩(FameLab) 코리아' 결선 무대에는 이씨를 비롯해 과학자와 과학전공 학생 10명이 참가했다. 페임랩은 2005년 영국 첼튼엄 과학축제에서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무엇을 연구하는지 과학자들이 직접 대중들에게 설명하자'는 목표로 시작된 과학 발표 경연대회다. 대중과 소통하는 과학자, 즉 '과학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를 육성하자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파워포인트 같은 발표 자료 없이 무대 위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소품으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3분의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구체적인 지식 전달보다는 과학 원리를 일상생활에 비유해 대중의 관심을 이끄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열렸다.

충북대 식물의학과 이보람(23)씨는 해충을 먹이로 삼는 '곤충 곰팡이'를 이용한 친환경 농약을 발표 주제로 삼았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화학 농약을 대체할 수 있는 '만능 농약'이라는 점이 포인트였다.

이씨는 "곤충 곰팡이는 곤충의 껍데기에서 발아한 다음, 곤충 내부로 침투해 불과 며칠이면 작물을 갉아먹는 해충을 모두 죽게 만들 수 있다"면서 "특히 곤충을 죽이는 과정에서 나온 물질들이 작물에 병을 일으키는 일부 균까지 없앤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나 농작물에는 해가 없어, 미래의 농약으로 관심으로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과학 이론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기량을 겨루는‘2015 페임랩 코리아 결선대회’에서 서울대 생명과학부 대학원생 안지현씨가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세포 공장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회는 20일 서울 광화문 KT올레스퀘어에서 열렸다.

행사를 기획한 한국과학창의재단 김재혁 연구원은 "3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지만, 참가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어려운 주제에 도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술 같은 양자역학'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KAIST 물리학과 송영조(23)씨는 양자역학에서 원자가 다양한 상태를 가진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공의 색깔이 여러 가지로 변하는 마술을 선보였다. '바이러스 만들기'를 발표한 서울대 생명과학부 안지현(29)씨는 직접 만든 세포 공장으로 모형 유전자를 넣어 바이러스가 만들어져 나오는 과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 심사를 맡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정모 관장은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지루한 설명은 과학과 대중을 더 멀어지게 한다"면서 "복잡한 수식이나 용어보다는, 단순하거나 엉뚱하더라도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의 대상(大賞)은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이영익씨가 받았다. 이씨는 오는 6월 영국 첼튼엄에서 열리는 '페임랩 세계대회'에 한국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올해 대회에는 전 세계 36개국 대표들이 참가한다.

김승환 한국창의재단 이사장은 "2005년부터 지금까지 대회에 참여한 5000여명의 '페임래버(페임랩 참가자)'는 난해한 과학기술 정보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과학소통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면서 "연구뿐 아니라 대중과 소통까지 할 수 있는 진짜 연구자가 이런 행사를 통해 많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