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내비게이션은 GPS(위성항법장치)용 위성의 신호를 받아 작동한다. 지구 상공 2만㎞에 떠 있는 GPS 위성들은 어떻게 셀 수 없이 많은 차량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구분하고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걸까.

이는 GPS 위성에 극도로 정밀한 '원자시계(原子時計)'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원자시계는 원자에서 일정하게 내보내는 주파수를 활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다. GPS 위성의 원자시계는 수천년 만에 1초 정도가 어긋날 정도로 정확함을 자랑한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설치돼 있는 세슘 원자시계 ‘KRISS-1’.

만약 지구상의 한 자동차와 연결된 GPS 위성 두 대의 원자시계가 100만분의 1초 틀린다면 오고가는 전파의 속도(초당 약 30만㎞) 때문에 자동차에는 300m 이상 잘못된 위치가 전송된다. 아예 엉뚱한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으로 정보가 전달될 수도 있다.

실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원자시계

대학의 수강 신청이나 유명 가수의 콘서트 예매가 시작되면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에 어김없이 '원자시계'가 등장한다.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제공하는 한국 표준시와 컴퓨터의 시계를 정확하게 맞추려는 사람이 많아서 생긴 현상이다.

표준연구원 유대혁 시간센터장은 "포털이나 이동통신사 등도 원자시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컴퓨터 시계도 여기에 맞추면 예매 성공 확률이 미세하나마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포털이나 이통사가 원자시계를 사용하는 이유도 GPS 위성과 비슷하다. 이통사 기지국과 인터넷 서버로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는 세밀한 시간 단위로 쪼개져 들어오고 나간다. 만약 오차가 생기면 누구의 정보인지 식별이 불가능해진다. 이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한 대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상용(商用) 원자시계들이 네트워크 곳곳에 설치돼 있다.

현재 한국 표준시(標準時)를 결정하는 데 쓰이는 원자시계는 모두 9대다. 세슘(Cs) 원자를 이용해 만들어진 이 시계들은 약 30만년에 1초 정도 오차가 생긴다. 세슘 원자는 장소나 기온 변화에 상관없이 진동하는 주파수가 일정한 것이 특징이다.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고온의 오븐에 고체 상태의 세슘을 넣는다. 여기에 마이크로파나 레이저 등 전자기파(電磁氣波)를 쏘면 세슘 원자는 9.19기가헤르츠의 주파수로 일정하게 진동한다. 즉, 세슘 원자가 91억9263만1770번 진동하는 것을 1초로 삼는 것이다.

각 나라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

국제도량형사무국(BIPM)은 1972년 1월 1일부터 세계 각국의 원자시계 300여개의 한 달간 기록을 모아 평균을 낸 뒤 다음 달 10일에 국제표준시를 발표한다. 이 평균보다 시간이 빨랐던 나라는 원자시계를 조금 느리게, 시간이 느렸던 나라는 조금 빠르게 조정한다. 한국 표준시는 지난달 전 세계 평균보다 2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초 빨랐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 4월의 시간은 3월보다 1억분의 2초 느리게 가고 있다.

전 세계 연구진들은 세슘보다 더 정확한 원자시계 개발을 위해 애쓰고 있다. 가장 유력한 차세대 원자시계는 '이터븀(Yb)' 원자시계다. 이터븀은 518테라헤르츠(1초에 약 518조번 진동하는 주파수)의 주파수로 진동한다. 세슘 원자시계와 비교하면 5만6000배 이상 정확하다. 이터븀 원자시계는 약 1억년에 1초 정도만 오차가 생긴다. 다만 주파수가 높을수록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더 힘들기 때문에 아직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