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본사를 둔 TV·영화 콘텐츠 제작·배급업체 콘텐트 미디어는 지난해 신한금융투자와 주관사 계약을 맺고 연내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포맷을 미국 방송사에 판매하는 등 아시아 시장에서 사업을 확장 중인 이 회사의 존 슈미트 CEO(최고경영자)는 "한국은 미디어 콘텐츠 산업에 대한 수요가 많아 새로운 기회 창출이 용이하다"며 "한국 주식시장에서 미디어 기업의 주가가 높게 평가받는 것도 한국 상장을 추진하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한동안 한국 증시에 발길이 끊겼던 외국 기업들이 상장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지난해 미국·중국·영국 국적 기업 10곳이 한국 증권사와 주관사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올해는 벌써 8개 기업이 주관사를 선정했다. 주관사 선정은 상장을 위한 첫 단계로, 이후 기업 실사와 상장 심사를 거쳐 실제 상장되기까지 통상 1년쯤 걸린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5개 정도 기업이 대거 코스닥에 입성할 전망이다. 외국 기업으로는 마지막으로 지난 2013년 5월 상장한 엑세스바이오 이후 2년여 만이다.

코스닥 활황 본 외국 기업들 "한국으로 가자"

외국 기업들 사이에 다시 한국행(行) 붐이 인 가장 큰 이유는 코스닥 활황으로 다른 나라보다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가령 요즘 코스닥에서 잘나가는 방송·엔터테인먼트 업종의 평균 주가수익배율(PER)은 30배, 제약 업종은 56배, IT서비스 업종은 73배, 바이오 업종은 170배에 이른다. 신규 상장기업의 공모가를 결정할 때 동종 업계의 PER이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에 업종 PER이 높을수록 신규 상장기업의 주가도 높게 책정된다.

코스닥이 거래가 활발하다는 점도 외국 기업 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원래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했던 중국계 가구업체 패션아트는 낮은 유동성과 저평가에 실망해 자진 상장폐지한 뒤 한국과 영국, 홍콩 세 나라를 놓고 저울질하다 최근 한국행을 결정했다.

상장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도 한국 증시의 장점이다. 상장을 준비하려면 법률·회계 자문 수수료와 주관사 수수료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한국은 주요국 중 비용이 가장 저렴한 편이다. 가령 미국 나스닥은 공모금액의 평균 10.2%, 홍콩은 9.3%를 각종 비용과 수수료로 지출하는 반면, 한국은 2.2%에 불과하다.

한국거래소의 적극적인 유치 활동도 한몫하고 있다. 거래소는 한 해 100개 이상의 기업을 신규 상장시킨다는 목표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한국 증시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기업들을 상대로 상장 설명회를 연 데 이어 올해 미국, 중국, 유럽, 일본, 태국 등을 돌며 한국 증시 상장의 장점을 알릴 예정이다.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상장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 기업의 상장 횟수가 늘어나면 증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국내 증권사 IPO 담당 부서들 역시 일감이 늘어나 수익이 올라간다"며 "투자자 입장에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해외 기업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셈"이라고 말했다.

외국 기업 상폐 악몽 떨쳐낼까

외국 기업의 한국 상장은 지난 2010년을 전후해 절정을 이뤘다가 급속하게 열기가 사그라들었다. 한국 증시가 장기 박스권에 갇히며 활력을 잃은 이유도 있지만, 한국 상장 외국 기업이 부실한 회계 처리와 의사소통 부재 등 숱한 말썽을 일으키며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우증권이 상장을 주관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가 2년 만에 퇴출돼 파문을 일으킨 중국고섬을 비롯해 지금까지 상장한 22개 외국 기업 중 8개가 상장폐지됐다. 남아 있는 14개 기업 중에서도 거래가 정지된 평산차업을 포함해 8개 기업은 현재 주가가 공모가에도 못 미친다. 한국 증시의 국제화를 목표로 추진했던 외국 기업 상장이 한국 투자자들에게 기쁨보다는 고통을 안겨준 경우가 훨씬 많았던 셈이다.

제2의 외국 기업 상장 러시를 맞아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거래소와 주관 증권사들이 유치 실적에만 매달리지 말고 철저한 심사와 관리로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거래소 하종원 상장유치부장은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상장 심사 기간을 더 길게 잡고, 주관사가 자기 돈으로 신규 상장 주식을 매수해 보호 예수토록 하는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