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하얀 쌀밥은 어머니의 사랑, 아련한 추억, 유년 시절의 기억 등이 담긴 특별한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전기밥솥 회사를 시작한 원동력이 바로 이 당시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경남 양산에 본사를 둔 쿠쿠전자가 대한민국 최고의 전기밥솥 회사로 성장하고, 세계시장에 당당히 수출하게 된 것도 어려서부터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랫목에 묻어둔 밥 한 공기

유년 시절, 어머니는 아랫목에 항상 갓 지은 밥 한 공기를 묻어 놓으셨다.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오는 자식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흔한 전기밥솥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밥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세심한 정성이 필요했다. 늦은 저녁, 가지런한 찬 사이로 밥그릇 뚜껑을 열면 밥에서는 아직 살아 있는 김이 살포시 피어올랐다. 뜨거운 김이 한숨 날아간, 그래서 먹기 딱 좋은 온도의 밥이었건만 그때 나는 일부러 입으로 후후 소리를 내 가면서 밥을 먹곤 했다. 따뜻한 밥을 챙겨주신 어머니의 고생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구자신 쿠쿠전자 회장이 경남 양산에 있는 본사 집무실에서 전기밥솥을 열어 보이고 있다. 그는 “지금도 하얀 쌀밥을 볼 때면 어머니가 ‘받은 만큼 나누고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시던 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고향을 떠나 대학에 들어가자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한번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밖에서 일을 보다 보니 밤 12시가 다 된 시간까지 저녁을 먹지 못했다. 늦은 시간 집에 도착한 나는 조용히 혼자 주방에서 밥상을 차렸다. 몇 개의 찬을 놓고 밥을 올리기 위해 아랫목을 찾아보니 곱게 담긴 밥 한 공기가 이불에 고이 싸여 있었다. 아랫목의 밥공기들은 내가 대학을 간 뒤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집에서 저녁식사 할 일이 거의 없음에도 어머니는 내내 아무 말 없이 따뜻한 밥공기를 가슴에 품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별일 아니지만 밥상에서 주고받는 어머니와의 소담한 대화도 내 유년 시절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때 어머니가 내게 자주 당부하던 말씀이 있다. "받은 만큼 나누고 살아야 한다." 지금도 하얀 쌀밥을 볼 때면 그 당시 어머니가 당부하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하도급 벗어나 독자 브랜드로 승부

그런 밥을 먹고 자라서인가. 창업을 할 때도 늘 따뜻한 밥공기를 생각하다 운명적으로 전기밥솥 제조업을 택하게 됐다. 1978년 나는 중소기업인 성광전자(쿠쿠전자의 전신)를 설립해 대기업에 밥솥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가장 큰 위기이자 기회는 1997년 말 한국 경제를 뒤흔든 외환위기 때 찾아왔다. 당시 대기업에서도 제품을 거의 팔지 못하는 바람에 우리 회사가 납품하는 물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회사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 직원들은 불안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데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다양한 대안을 생각하던 차에 대기업 납품에서 벗어나 독자 브랜드를 출범하는 방안이 떠올랐다. 1995년부터 압력 기능을 추가한 전기압력밥솥 연구를 진행해 기술력은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경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독자 브랜드가 성공한다는 확신이 없어 나 또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직원들의 생계가 내 결정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섣불리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해외영업팀장으로 있던 아들(구본학 사장)도 독자 브랜드가 승산이 있다며 힘을 보탰다. 숱한 고민 끝에 회사의 장기 발전을 위해 '쿠쿠'라는 독자 브랜드로 영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20년 동안 외주 생산만 해온 회사에 영업 인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우선 자체 인력으로 영업 조직을 갖추고 직원들과 함께 판매 현장을 쫓아다녔다. "지방 중소기업이 무슨 수로 대기업과 맞서느냐"는 유통업체 관계자들을 설득해 겨우 거래처를 하나둘씩 확보했다.

겨우 유통매장에 진열은 했지만 인지도가 낮은 중소기업의 밥솥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케팅에도 힘을 썼다. 연간 50억원의 광고비를 신문과 방송 광고에 투입했다. 마침 외환 위기로 다른 기업들의 광고 물량이 급감하던 때라 우리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거둔 효과는 컸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쿠쿠' 브랜드를 기억하기 쉽게 만든 '쿠쿠하세요, 쿠쿠'라는 CM송은 아직도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회자된다.

쿠쿠 브랜드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잊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가 나를 위해 아랫목에 묻어두었던 쌀밥 한 공기였다. 나는 2007년 쿠쿠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과 전기밥솥 등을 지원하는 복지사업을 시작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나이 든 시어머니를 부양하며 사는 베트남 여성은 밥솥을 지원받은 뒤 감사 편지를 보내왔다. "전에는 냄비에 밥을 하다 보니 밥이 식고 굳어 있어 시어머니께 밥상을 올리기 미안했는데, 이제는 전기밥솥에 밥을 하니 밥이 항상 따뜻하고 맛있어 고맙다"고 썼다. 기업인으로서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남들과 나누며 더욱 보람찬 인생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행복한 인생이 어디 있을까.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랫목에서 알려준 '나눔'이라는 삶의 지혜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의 내 모습을 어머니가 본다면 "수고했다"며 뜨거운 김이 나오는 밥을 아랫목에서 꺼내 소박하고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지 않을까 싶다.

☞구자신 회장은

구자신(具滋信·74) 쿠쿠전자 회장은 전기밥솥 업체 쿠쿠전자를 연매출 5700억원대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창업가다. 1941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대기업에서 10년 동안 일한 뒤 1978년 쿠쿠전자의 전신인 성광전자를 설립해 금성사(현 LG전자)에 전기밥솥을 만들어 납품했다.

1998년에는 자체 브랜드인 ‘쿠쿠’ 밥솥을 출시해 1년 만에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한 이후 지금까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시 국내에서 유행하던 일본 회사의 ‘코끼리’ 밥솥은 물론 쟁쟁한 대기업 밥솥을 물리친 성과였다. 현재 쿠쿠 밥솥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에 오면 꼭 사가야 할 품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06년 회장으로 취임하며 장남인 구본학 사장과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다. 취미는 골프와 등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