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대 중반 5인조 남성그룹 H.O.T가 소녀 팬들의 우상으로 떠오르며 큰 인기를 얻고 있을 때, 한 편에서는 이들을 탐탁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철저하게 소속사의 계획에 의해 뽑히고, 일정 기간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 데뷔한 ‘육성형’ 아이돌 가수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었다.

낯선 아이돌 가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던 사람들에게선 “기획사가 잘생긴 외모를 가진 멋쟁이들을 가수로 만든 뒤 어린 학생들의 ‘코 묻은 돈’을 가져간다”는 말들도 나왔다. H.O.T의 공연에 10대 소녀들은 열광했지만, “립싱크로 입만 벙긋대며 춤 실력만 보여주는 것도 가수냐”는 비아냥 섞인 평가도 많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아이돌 가수에 대한 비판과 논란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돌 가수는 이미 음반과 공연시장의 주류가 됐고,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 더 큰 인기를 얻는 한류 콘텐츠의 대명사가 됐기 때문이다. 유망주를 뽑아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게 한 후 데뷔를 시키는 과정은 이제 너무나 당연한 연예계 입성 코스로 인식된다.

어느덧 문화계 주류로 떠오른 아이돌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그 중심에는 숱한 논란의 대상이 됐던 ‘원조 아이돌’ H.O.T를 키워낸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있었다. 90년대 H.O.T와 S.E.S, 신화 등을 연달아 히트시킨 SM은 2000년대 들어서도 보아와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엑소(EXO) 등이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시가총액 7000억원대의 코스닥시장 상장사로 성장했다.

그런데 최근 SM의 독주 체제에 이상 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최근 회사의 실적은 지속적으로 악화됐으며, 주가도 지난해부터 약세를 보이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이 돼야 할 주력 그룹의 멤버들이 잇따라 이탈하는가 하면, 야심차게 키워내 데뷔시킨 신인들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고전하기도 했다. ‘제국’ SM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 정체된 매출, 이익은 감소세…잇따른 악재에 주가도 내리막

최근 몇 년간 SM의 실적은 계속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지난 2013년 SM의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액은 2687억원으로 전년대비 11.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405억원으로 33.1%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180억원으로 51.8% 줄었다.

지난해는 부진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매출액이 2870억원으로 소폭 늘긴 했지만, 영업이익은 323억원으로 전년대비 15.3%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고작 18억원에 머물며 89.8% 감소했다.

같은 기간 경쟁사들의 실적은 정반대였다. 최대 라이벌인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대비 34.3%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SM의 10배에 해당하는 183억원을 기록해 21.4%의 증가율을 보였다. JYP엔터테인먼트역시 지난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말 코스닥시장에 합류한 에프엔씨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매출액은 전년대비 21.1%, 당기순이익은 180.5% 증가했다.

다른 엔터주들이 선전한 가운데 실적이 ‘나 홀로’ 뒷걸음질하면서 SM의 주가도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지난해 3월 5만3500원까지 올랐던 SM은 10일 3만4500원에 마감, 1년여만에 35.5% 하락했다. 주가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지난해 YG에 연예기획사 시가총액 순위 1위 자리를 내준 뒤 지금도 2위에 머물고 있다.

◆ 군대 가는 동방신기, 소녀 아닌 소녀시대

증권사들은 지난해 SM의 실적 부진에 대해 소속 가수들에 대한 수익 배분율과 인센티브가 확대됐고, 엔화 약세 영향으로 일본 공연을 통해 들어오는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세무조사를 받고 지난해 국세청으로부터 102억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은 것도 실적 악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금융시장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SM의 실적과 성장이 앞으로 더욱 험난한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회사의 주춧돌인 주력 그룹들이 군 입대 등으로 인해 활동을 멈추는 데다, 다른 주력들의 인기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 투입한 신인들이 다음 자리를 메울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아이돌 중심의 사업 구조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뛰어든 신사업들도 아직 제대로 실적을 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① 양 날개가 꺾이기 시작했다

제시카의 탈퇴로 8명이 활동 중인 소녀시대.(SM 홈페이지)

현재 SM의 실적을 지탱하고 있는 양 날개는 2인조 남성그룹인 동방신기와 8인조 여성그룹 소녀시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다음으로 매출 비중이 높은 일본 시장에서 동방신기는 지난 2013년 라이브 시장 기준 관객 수 89만명을 기록해 1위에 올랐고, 소녀시대는 3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동방신기는 앞으로 2년간 군 입대로 인해 활동을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산케이스포츠는 지난 3일 도쿄돔에서 열린 동방신기의 데뷔 10주년 공연에서 멤버인 유노윤호(본명 정윤호)가 올해 군 입대 사실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다른 멤버인 최강창민(본명 심창민) 역시 비슷한 시기 입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방신기는 음반 판매와 공연 등에서 SM 매출의 절반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들이 자리를 비울 내년까지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2012년 데뷔해 최근 국내·외에서 빠르게 인기몰이 중인 남성 아이돌 그룹 엑소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2003년 데뷔 후 12년간 활동하며 많은 고정 팬을 확보한 동방신기의 공백을 단기간에 100% 메우기는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다.

소녀시대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도 SM의 고민이다. 리더 태연(본명 김태연)을 비롯한 멤버들은 1989년에서 1991년생이다. 2007년 데뷔 당시 소녀였던 이들의 나이는 이제 만 26세 전후다. 더 이상 소녀스러운 매력으로 어필하기 힘들어지면서 최근 콘셉트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반응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해 3월 낸 앨범 ‘미스터미스터’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에는 멤버 중 하나였던 제시카(본명 정수연)도 팀을 나가면서 예전의 인기를 되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② 잇따른 주력그룹 팀원 탈퇴…흔들리는 매니지먼트

SM의 최대 기대주 엑소. 일본 공연이 시작되면 매출 비중이 크게 늘 전망이다.(SM 홈페이지)

지난해 SM의 주가가 부진한 흐름을 보였던 것은 주력 그룹 멤버의 잇따른 탈퇴도 한 몫을 했다. 특히 제시카의 이탈과 함께, 회사 실적을 최소 몇 년 이상 지탱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최고의 기대주 엑소에서 이탈자들이 나온 점이 뼈아프다.

엑소는 처음부터 국내 뿐 아니라 중국 등 해외 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고 결성한 그룹이다. 12명의 멤버 중 4명이 중국인이었는데, 이 중 크리스와 루한 두 명의 중국인 멤버가 지난해 팀을 탈퇴했다. 애초 계획했던 활동 방향을 수정하고, 현지화 전략 역시 바꿔야 할 수 밖에 없다.

SM은 특히 다른 연예기획사에 비해 주력 그룹의 팀원 이탈이 눈에 띄게 많았던 곳이다. 주로 수익 배분에서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H.O.T 멤버 5명 중 3명이 나갔고, 동방신기 역시 노예계약 논란 속에 3명이 탈퇴해 2명만 남게됐다. 2009년에는 슈퍼주니어의 중국인 멤버 한경이 팀을 떠나기도 했다.

문제는 거듭된 가수와 회사의 갈등으로 인해 내부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라이벌인 YG의 경우 수익 배분 때문에 팀이 분열된 적은 거의 없다”며 “현재의 수익 배분 계약구조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기껏 큰 돈을 투자해 가수를 키운 뒤 분쟁으로 무너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③ 불안한 세대교체…자회사 실적 부진도 골치

기존 주력 그룹들의 대를 이어줘야 할 신인들이 얼마만큼 제 몫을 해 낼 수 있을 지도 여전히 의문부호다. 지난해 8월 데뷔한 5인조 여성그룹 레드벨벳은 아직 인기나 음원 판매 순위 등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SM은 과거에도 주력 그룹의 교체 과정에서 몇 차례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 H.O.T의 해체 이후 이들의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기대했던 남성그룹 블랙비트가 큰 인기를 얻지 못 했고, S.E.S 이후 데뷔 시킨 천상지희의 실패로 2007년 소녀시대가 등장할 때까지 걸그룹 운영에서 고전했다.

주요 자회사인 SM C&C의 실적 부진도 골칫거리다. 영상콘텐츠 제작과 여행업, 매니지먼트 사업 등을 하는 SM C&C는 SM이 인수한 2012년 이후 줄곧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2013년 1억7500만원이었던 영업손실 규모는 지난해 63억원으로 불어났고, 당기순손실도 9억7500만원에서 84억원으로 증가했다.

SM C&C는 여전히 SM엔터테인먼트 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회사다. 특히 배우 장동건과 MC 강호동, 신동엽, 전현무 등이 포진해 있는 매니지먼트 사업 부문은 다른 전문 매니지먼트 업체와 견줘도 앞서가는 수준이다. 그러나 여전히 드라마를 비롯한 콘텐츠 사업 부문에서의 실적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여행업 등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 최고의 아이돌 양성소… "제국 건재할 것" 전망도

SM타운 코엑스 아티움 안의 기념품점.

그러나 금융시장에서는 SM엔터테인먼트가 곧 부진을 딛고, 빠른 시간 안에 실적 개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 1989년 설립 이후 26년간 운영되면서 쌓은 경영 노하우와 마케팅 능력 등은 다른 후발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에 비해 여전히 한 걸음 앞서 있다는 분석이 많다. ‘원조 아이돌 양성소’로 꼽히는 SM의 신인가수 트레이닝 과정도 가장 체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는 다른 그룹들도 각자 탄탄한 입지를 갖고 있다. 2005년 데뷔 후 10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슈퍼주니어는 멤버들이 돌아가며 병역을 마친 후 속속 복귀하고 있으며, 2008년 등장한 샤이니 역시 멤버들의 나이가 20대 중반이라 약 3~4년간은 꾸준히 활동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내 ‘SM타운 코엑스 아티움’ 출입문.

신사업들도 추진되고 있다. 특히 올 초 문을 연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SM타운 코엑스 아티움’은 장기적으로 회사에 꾸준한 부가 수익을 가져다 줄 사업으로 꼽힌다. 이 곳은 SM 소속 가수들의 전용 공연장과 캐릭터 용품 판매점, 카페, 극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정엽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중국에서도 메인 사업파트너를 확보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공연과 방송, 광고 등에서 현지 매출액을 나눠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코엑스 아티움의 경우 아직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한 부가수익 규모는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SM이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로써 위치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힙합을 기반으로 하지만, 여러 장르의 가수들을 영입해 라인업을 확대한 YG와 달리, SM은 자체 양성 중심으로 운영돼 음악적 색채가 일정 틀 안에서 유지된다는 주장도 있다”며 “보다 다양한 형태의 시도와 실험을 통해 팬층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