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트위터에서 재미있는 단문을 접했다. 제프 자비스(Jeff Jarvis)가 올린 글이었다. 자비스는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IT 분야 파워블로거다. 국내에도 번역된 ‘구글노믹스’와 ‘공개하고 공유하라’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이날 독일 잡지 슈피겔의 신간 커버스토리를 소개했다. 기사의 제목은 ‘세계 정부: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우리를 통제하나’.

그는 유럽의 유력지인 슈피겔이 현재 유럽에 팽배해 있는 실리콘밸리발(發) 기술혁명에 대한 과잉 공포를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을 더했다. 문장 중간중간에 ‘맙소사(Oh, My!)’라는 탄식까지 붙여가며, 마치 ‘어처구니없다’는 투였다.

얼마 후 슈피겔 영문판에 그 기사가 떴다. 영어 제목은 독어 원제보다 날이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세계정부(Weltregierung)’라는 표현은 ‘미래 나라(Tomorrowland)’라는 단어로 교체됐다.

전문을 찬찬히 읽어봤다. 잡지 표지에 실리콘밸리의 IT 혁신 주역들을 다소 섬뜩하게 배치한 것이 어떤 편견을 드러낸 것 같긴 했다. 비록 ‘거리에서 오가는 말’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글 도입부에 우버 공동창업자인 트래비스 칼라닉을 ‘X같은 X’라고 써놓은 것도 다분히 감정 섞인 대목 같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한번쯤 짚을 만한 것을 짚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문의 슈피겔 기사의 요지는 이렇다.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엘리트 그룹은 단순히 새로운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 유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거침없는 세계화와 디지털 혁명의 파상적인 힘이 결합되면서 세상을 자기 방식대로 평정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의 특징은 과거 자산가나 기업가들처럼 그저 부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다. 이들은 ‘세상을 더 낫게 변화시키겠다’는 사명감과 확신에 차 있다. 사실,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IT 혁신가들이 품어온 ‘기술을 통한 인간 개인의 해방’이라는 생각이 1960년대 미국의 대항문화(counter-culture) 운동에서 비롯했음은 알려진 이야기다.

슈피겔은 이 기사에서 실리콘밸리의 4인방을 소개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은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다. 올해 67세, 구글의 엔지니어링 디렉터인 그는 지금도 매일 100개의 알약을 삼킨다. 비타민, 미네랄, 효소 같은 것들이다. 그는 기술 발전이 인간의 수명을 비약적으로 연장해줄 시기가 조만간 도래할 걸로 믿는다. 그때까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지행합일이라고 하겠다.

그는 ‘특이점(Singularity)’ 이론으로도 유명하다. 2029년이면 인공지능(AI)이 인간을 앞지를 것이라는 대담한 예측이다. 그는 ‘다가온 특이점(The Singularity is Near)’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기술 변화는 너무나 급속도로 빨라지고 그 충격은 심대해서 인간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제 14년 남았다.

과학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면서 사고(思考)의 지평도 급변하고 있다. 예전에 ‘실존주의(Existentialism)’라고 하면 ‘생의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형이상학의 기반이 사라지고 난 근대 이후 세계의 근본적인 무의미와의 투쟁이 지식인의 과제였고, 그 싸움은 주로 철학자들 몫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무성한 ‘실존주의’ 담론은 보다 물질적이고 구체적이다. 그것도 과학자들 쪽에서 나온다.

트랜스휴머니즘의 대표적 이론가인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조만간 컴퓨터가 여러 분야에서 인간을 앞지를 것이라며, 그것이 초래할 ‘실존적 위협’을 줄기차게 경고한다. 여기에는 최근 스티븐 호킹,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까지 가세했다.

혹자는 인간의 의식조차 해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계의 ‘추월’은 기우라는 반론도 내놓는다. 하지만 기계의 사고방식이 인간의 것과 ‘질적으로’ 같을 필요는 없다고 보스트롬은 반박한다. 사람을 채용할 때도 그 사람 의식의 비밀까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인간을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파급력은 걷잡을 수 없이 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어떤 임계점에서 전이의 과정은 순식간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복잡계 이론에 따르면 혁명은 도둑처럼 온다고 했다. 기계의 개선과 도약도 어느 순간 급작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문화평론가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선구적인 저서 ‘테크노폴리(Technopoly)’에서 우리가 인류 사회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든 바로 그 기술이 도리어 인간을 통제하게 된 상황을 이야기한다. 기술의 패러독스다. 사람들은 노동의 수고를 덜기 위한 도구로 기술을 사용했지만 그 도구는 ‘문화적 사고 체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테크노폴리(기술의 독점) 상태에 이르면 도구는 문화를 뒷받침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화를 지배하게 된다.

최근,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다룬 신간 ‘사피엔스(Sapiens)’로 주목받고 있는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히브루대학 교수도 현대 인류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7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 한 구석을 몰려다니는 하잘것없는 유인원이었다. 수만 년이 지나 전 지구를 정복하고 환경계를 지배하게 됐다. 이제는 신이 되려 한다. 영원한 젊음뿐만 아니라 창조와 파괴의 신적인 능력까지 손에 넣으려 한다.”

여기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카누에서 갤리선으로, 다시 증기선으로, 우주선으로 진보했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지만 그 힘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미래를 그린 SF영화로는 고전이 된 ‘메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빨간약을 삼키고 ‘진실’을 경험한다. 숨가쁜 디지털 혁신의 시대, 가끔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 큰 그림을 조망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자비스의 호들갑은 그래서 가벼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