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라며 울먹이던 홍길동의 설움을 아는 공룡이 있었다. 자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릴 수 없었던 공룡이 112년 만에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포르투갈과 영국 공동연구진은 8일 “수백 가지 공룡 화석과 화석 그림들을 비교분석한 결과 초식공룡 ‘브론토사우루스(Brontosaurus)’가 독자적인 속(屬)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브론토사우루스는 1억5000만 년 전 지구에서 살았던 초식공룡으로, 목과 꼬리가 매우 긴 것으로 유명하다. 몸길이가 20여m에 몸무게가 30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브론토사우루스란 이름이 금지어였다. 1989년 미국에서 브론토사우루스란 이름을 단 공룡 우표가 나오자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 “과학적 명명법보다 만화의 명명법을 우선시했다”고 우정청을 고소했을 정도였다. 1879년 발굴 당시 별도의 속으로 분류됐으나, 뼈 구조가 2년 앞서 발굴된 초식공룡 ‘아파토사우루스(Apatosaurus)’와 흡사하다고 해서 1903년부터는 아파토사우루스 속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브론토사우루스로 불렀다. ‘천둥 도마뱀’, 즉 뇌룡(雷龍)이란 뜻의 이름 탓에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와 함께 일반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3대 공룡이 됐다. 미국 애니메이션 ‘플린스톤 가족’에서는 주인공 원시인의 애완 공룡으로도 등장했다. 미 우정청은 브론토사우루스 우표 발행 당시 “대중이 사랑하는 이름”이라고 과학계의 비판을 일축했다.

1989년 발행된 미국의 우표에 등장한 브론토사우루스. 학계에서는 아파토사우루스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대중적 인기 때문에 우표에는 여전히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이름이 쓰였다.

이번에 신(新)리스본대 이마누엘 촙 박사 연구진은 전 세계 18개 박물관에 있는 초식공룡의 화석과 화석도를 모두 조사해 브론토사우루스가 아파토사우루스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을 십여 가지 찾았다. 연구진은 “새로 밝혀진 차이로 볼 때 두 공룡은 종(種)이 다른 정도를 넘어 그보다 위 분류 단계인 속이 다르다고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고생물학계는 대부분 이번 연구에 수긍하는 분위기이다. 영국 런던대의 고생물학자 폴 업처치 교수는 “브론토사우루스란 이름을 다시 쓸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공룡 분류 자체가 주관적 요인이 많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지만 연구진은 “초식공룡에 대한 연구로는 가장 많은 데이터를 분석한 객관적 결과”라고 강조했다.

브론토사우루스가 이름을 두고 100년이 넘게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졸속으로 진행된 발굴 탓이다. 19세기 말 미국 예일대의 고생물학자 마시 박사는 동료 코프 박사와 ‘뼈 전쟁 (Bone Wars)'으로 불린 화석 발굴 경쟁을 벌였다. 마시 박사는 2년 간격으로 아파토사우루스와 브론토사우루스 화석을 발굴했지만 연구 결과를 빨리 발표하려고 면밀한 비교도 하지 않고 바로 각각 다른 속으로 분류했다. 그러다가 1903년 다른 고생물학자가 뼈 구조가 거의 같다고 주장하자 아파토사우루스로 통합됐다. 과학 분류에서는 먼저 만든 이름에 우선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