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개최한 ‘테헤란로 커피클럽’에 참석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마 제가 가장 먼 곳에서 왔을 것 같은데요. 10시간 40분 걸려서 호주 시드니에서 날아 왔습니다.(웃음) 한국에 방문할 일이 생겼는데 유익한 모임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부동산 수수료 할인 앱(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창업가입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서비스를 오픈합니다.”

“성균관대 학생입니다.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에 관심이 많아 참여하게 됐습니다.”

“네이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과 네이버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관련 법률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변호사입니다.”

3월 11일 오전 7시 45분 서울 강남 테헤란로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백팩을 멘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코트에 정장을 입은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사이라고 했는데, 나이 차이가 제법 있어 보인다.

이들이 모인 홀의 벽면엔 ‘Shift’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컴퓨터 자판에서 딴 이름이다. 대학강의실 분위기의 ‘Shift’안에 놓인 50개의 좌석은 곧 모두 찼다.

이날은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테헤란로 커피클럽’이 있는 날이었다. ‘모바일 앱 시장 분석 솔루션과 관련 시장 동향’, 다음카카오의 ‘뉴스펀딩’, ‘최근 앱 트렌드 소개’ 등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자 참석자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테헤란로 커피클럽’에서 제공한 홈메이드 티.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소개를 마친 뒤엔 자유롭게 명함을 교환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30여분 넘게 계속됐다.

'테헤란로 커피클럽'은 대학생, 대기업 직원, 벤처 투자가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스타트업' 이라는 공동의 관심사 아래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자유롭게 정보를 주고 받는다. 커피나 차를 마시며 이웃과 대화하는 것과 같은 편안한 분위기다.
이들이 모인 홀의 이름대로 이들이 세계를 바꾸는 벤처 기업으로 shift할 수 있을까.

2014년부터 테헤란로 커피클럽을 시작한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는 비영리 벤처 지원기관이다. 2013년 7월 미래창조과학부 주도로 50여개의 공공기관, 인터넷 기업 등이 설립했는데, ‘신생기업 연대’란 뜻 그대로 스타트업 업계 주요 구성원들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누구나 신청만 하면 여러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테헤란로 커피클럽’에 참석한 스타트업 관계자가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 커피, 샌드위치로 교류…창업 문화 확산에 집중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는 건물 7층 한 층을 사용하는데, 이 공간은 세미나 공간, 회의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각 공간마다 Shift, Ctrl, F1 등 키보드 자판에서 따온 이름이 붙어 있다. 배달앱 업체로 잘 알려진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 대표가 디자인 인테리어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책상. 벽면에 ‘Ctrl’이라고 써있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는 다른 스타트업 지원 공간에 비해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연결과 교류, 창업 문화 확산에 더 집중하고 있다. 공간 자체가 넓지 않기 때문에 스타트업에 업무 공간을 제공하는 활동보다 인적 네트워킹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벽면에 써 있는 문구.

현재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네트워킹 모임은 4가지인데,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테헤란로 커피 클럽은 18번째 모임이 진행됐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이는 미국에서도 널리 시행되는 모델인데,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Boulder)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 창업가인 브래드 펄드(Brad Feld)가 운영하는 ‘오픈 커피클럽’이 유명하다.

커피클럽 외에도 샌드위치를 놓고 스타트업 전문가들의 강연 및 좌담회를 진행하는 테헤란로 런치 클럽, 스타트업과 관련된 좋은 책을 소개하고 저자 초청 강연 진행하는 테헤란로 북 클럽도 진행하고 있다. 최신 정보를 나누고, 특정 이슈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세미나 형식의 모임인 테헤란로 밋업(meetup)도 개최하고 있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미팅룸. 벽면에 F1이라고 써있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는 필요한 사람에게 공간을 빌려주기도 하는데, 지난 3월 28일엔 코딩클럽(Coding Club) 주최로 이곳에서 ‘주니어 소프트웨어 클럽’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초등학생 약 50명이 모여 스크래치(Scratch)라는 프로그래밍툴을 사용해 코딩에 입문하는 행사였다. 스타트업 문화 확산에 도움이 되는 행사라면 어떤 단체든지 신청을 통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만나 업무 제휴를 한사례도 있다. 포스티노라는 스타트업의 조원 이사는 이곳에서 주식회사 지식 뮤지엄의 관계자를 만나 콘텐츠 제휴를 진행했다.

3월 28일에 열린 ‘주니어 소프트웨어 클럽’ 행사 모습.

◆ 글로벌 네트워킹

글로벌 네트워킹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루마니아, 중국 선전, 아르헨티나, 미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의 창업 관계자들이 한국의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활용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스타트업인 ‘위데오(Wideo)’의 아구 데 마르코(Agu de Marco)대표는 지난 1일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라틴아메리카 시장과 자신의 회사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회사는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투자회사인 500스타트업의 투자를 받은 후 한국에 지사를 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원활한 국내 시장 진출을 위해 한국 창업 관계자들을 만난 것이다.

중국 액셀러레이터 핵스의 파트너가 런치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3월 31일엔 중국 선전의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벤처 투자 및 보육 기관)인 ‘핵스(HAX)’의 파트너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런치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다. 4월 2일엔 찰스 리프킨 미국 국무부 경제·산업담당 차관보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한국 창업가들과 만나 정보를 교류했다.

찰스 리프킨 미국 국무부 경제·산업담당 차관보가 한국 창업가들과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한국인’ 행사는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의 글로벌 네트워킹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다. 지난해 3월 네이버 분당 사옥에 있는 그린팩토리 커넥트홀에서 처음 개최됐는데, 실리콘 밸리의 한국인의 모임인 ‘Bay Area K-Group’ 관계자들을 초청해 실리콘 밸리에서 경험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전달했다.

올해는 오는 14일에 개최될 예정이다. 음재훈 트랜스링크 캐피털 대표,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 이수인 로코모티브랩스 대표, 이혜진 더 밈(The MEME) 대표, 조성문 스크럼 벤처스 벤처 파트너 등이 연사로 나선다.

2014년 3월 네이버 분당사옥에서 개최된 ‘실리콘 밸리의 한국인’ 행사 모습.

◆ 임정욱 센터장 “접근성과 개방성이 중요”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누구나 쉽게 업계 정보와 주요 인물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업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교류할 수 있도록 개방성을 갖춘 공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4년 3월 네이버 분당사옥에서 개최된 ‘실리콘 밸리의 한국인’ 행사 모습.

임 센터장은 “테헤란로 커피클럽이나 런치클럽에서 쉽게 창업 선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며 “가볍게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서 순수하게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그는 이어 “최근 싱가폴의 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에 갔더니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나려면 어디에 가면 된다고 알려 주더라”라며 “실리콘 밸리에서도 가벼운 모임이 많은데, 창업 생태계에선 이런 작은 연결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샌프란시스코나 보스톤에 스타트업이 많이 생기고 고급 인력이 유입되는 것은 역동적인 스타트업 생태계 때문이다”라며 “자생적인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