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철옹성처럼 여겨졌던 '3대 엔터사' 가운데 주력 가수들의 인기 하락과 신사업 발굴 실패 등으로 인해 성장이 점차 정체되는 업체들이 나오고 있는 반면, 다각화 된 사업구조를 바탕으로 해외시장 개척에도 성공해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제2의 성장기를 맞고 있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른 회사들은 어떤 강점과 특징을 갖고 있을까. '저무는 해'라는 혹평을 받는 전통의 강자는 다시 옛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편집자주]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열린 FNC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합동 콘서트

국내 증시에서 ‘3대 엔터주’로 꼽혔던 곳은 SM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였다. 모두 유명가수 출신 대표들에 의해 설립돼 성장해 온 공통점을 가졌는데, 주력 그룹과 가수들이 국내·외에서 얻은 높은 인기에 힘입어 실적 개선과 회사 규모 확대에 성공, 오랜 기간 국내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3대장’으로 군림해 왔다.

그런데 SM의 이수만, YG의 양현석, JYP의 박진영 등 세 수장(首長)에 비교가 되지 않던 한 무명(無名) 가수가 설립한 연예기획사가 최근 몇 년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오랜 기간 굳어졌던 3대 엔터주 시대의 세대교체를 예고하고 있다. 바로 지난해 1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에프엔씨엔터테인먼트(이하 FNC엔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올들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코스닥시장에서도 FNC엔터는 가장 눈에 띄는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무상증자 권리락이 있던 지난달 19일 기준가가 1만7450원이었던 FNC엔터는 3일 2만3250원에 마감, 12거래일만에 33.2% 상승했다. 같은 시기 YG와 JYP는 각각 6.7% 오르는데 그쳤고, SM은 0.3% 하락했다.

다른 여러 연예기획사와 달리 대표이사의 유명세를 등에 업은 회사가 아니다. 회사의 간판 그룹들은 다른 거대 기획사의 주력 선수들에 비해 국내에서 다소 힘에 부친다는 평가도 받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주목조차 받지 못했던 FNC엔터가 최근 엔터테인먼트 업종에서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 無名 가수의 초라한 시작, 매출액 600억원의 상장기업으로

시작은 초라했다.

FNC엔터는 지난 2006년 가수 한성호씨가 설립한 회사다. 2012년 회사 이름을 바꿀 때까지 7년간 ‘피쉬엔케익뮤직’이라는 사명(社名)으로 운영됐다.

한성호 대표는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못한 무명 가수였다. 1999년과 2002년 고작 2장의 앨범만 낸 채 가수 활동을 접었다. 이후 드라마 OST 프로듀서로 활동하긴 했지만, 대중적 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수로 성공했던 대표들의 인기와 명성을 기반으로 회사 설립 당시부터 빠른 성장이 예고됐던 다른 연예기획사들에 비해 FNC엔터의 출발은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FNC엔터는 연예기획사들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2012년 320억원이었던 매출액은 2013년 496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600억원을 돌파했다. 불과 2년만에 매출 규모가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67억원이었던 영업이익도 116억원으로 늘었고, 당기순이익도 49억원에서 79억원으로 증가했다.

◆ 공연·연기·드라마 제작·학원사업… '4박자 시너지' 효과

2007년 데뷔한 FNC엔터의 간판 그룹 FT아일랜드

FNC엔터의 매출과 이익 규모가 크게 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이후부터다. 이전까지 남성 밴드그룹 FT아일랜드에 의존하던 FNC엔터는 2010년 데뷔한 씨엔블루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회사의 실적을 견인하는 양 축을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FNC엔터는 엔터테인먼트 종목을 다루는 애널리스트들로부터 국내 엔터테인먼트사 가운데 사업 다각화가 가장 효율적으로 구성된 회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음반과 공연 수익으로 안정된 실적을 내고 있는 소속 가수들이 대부분 연기까지 겸업하고 있으며, 따로 연기자와 개그맨들까지 거느리고 있다.

신사업으로 드라마 제작과 연예인 지망생 교습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사업도 시작했다. 공연과 연기, 드라마 제작, 학원사업은 영역은 다르지만, 서로간에 밀접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장기적으로 안정된 실적 개선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4박자 시스템’을 구성한 것이다.

① ‘연기하는 밴드’ FT아일랜드와 씨엔블루를 캐시카우로

2010년부터 FT아일랜드와 함께 주력 그룹으로 성장한 씨엔블루

이정기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FNC엔터에 대해 “걸그룹이 신성장 동력이라면, 남성밴드는 ‘캐시카우’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현재 FNC엔터 실적에서 주력 그룹인 FT아일랜드와 씨엔블루가 벌어들이고 있는 수익의 규모가 크다.

FNC엔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두 그룹의 공연과 음원 수익이 차지한 비중은 60%에 이른다. 35%의 수익은 연기자 매니지먼트와 광고 등에서 나왔는데, 이 가운데 상당 부분도 두 그룹에 속한 가수들의 활동을 통해 벌어들였다. 5명으로 구성된 FT아일랜드와 4인조 그룹인 씨엔블루 모두 전원이 연기를 겸하며 드라마나 영화, 뮤지컬 등에 출연하고 있다.

두 그룹 모두 국내 시장보다 밴드의 라이브 공연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시장에서 더 큰 수입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전체 매출 가운데 일본에서 올린 매출 비중은 64%에 달한다. 동방신기(SM)와 빅뱅(YG) 등에 비해 일본 라이브 시장에서 동원한 관객 수는 적지만, 회사별로 보면 JYP를 제치고 SM과 YG에 이어 관객 수 3위를 기록했다.

중국 진출을 통해 두 남성밴드가 벌어들이는 수익의 규모는 더욱 늘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씨엔블루의 리더 정용화가 지난해 출연한 드라마 ‘삼총사’가 최근 중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앞으로 밴드 공연에서 관객을 동원하는데 효과를 볼 가능성이 크다.

② 2년 침묵 끝 대박 터뜨린 AOA…신인그룹 엔플라잉도 출격 대기

AOA 앨범 재킷 이미지

‘신성장 동력’으로 평가받는 걸그룹 AOA는 몇 년간 SM의 대들보가 됐던 소녀시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AOA는 지난 2012년 데뷔한 뒤 약 2년간의 침묵 끝에 지난해 발매한 앨범 ‘짧은 치마’와 ‘단발머리’가 잇따라 큰 인기를 끌면서 국내 주요 걸그룹 중 하나로 떠올랐다. 단독공연 횟수가 적어 지난해 매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5%에 불과하지만, 올해부터 공연 수입 규모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AOA 역시 지난해 영화 ‘강남 1970’에 출연했던 멤버 설현을 포함, 구성원 중 5명이 연기를 겸업하고 있어 FT아일랜드, 씨엔블루와 같이 ‘쌍끌이 수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신인그룹 엔플라잉도 올 상반기 첫 앨범을 발매하며 본격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FNC엔터 관계자는 “앞서 일본에서 발매된 앨범이 오리콘 인디즈 차트 주간 2위에 오르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③ 드라마 제작과 학원사업으로 시너지 강화 전망도

중국 상하이에서 운영하는 FNC GTC의 내부 모습

FNC엔터는 주요 신사업으로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었다. 올 초 KBS에서 방영된 ‘고맙다 아들아’에 이어 이달 말부터 방영될 ‘학교 2015’를 제작 중이다.

드라마 제작 사업은 당장의 수익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의 성격이 크다. 소속 신인 연예인들을 출연시켜 자연스럽게 얼굴을 알릴 기회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OST 제작과 음원 판매 등 각종 부가사업을 통한 수익도 얻을 수 있다.

학원 사업도 수강료 수입과 함께 유망 신인을 발굴하는 통로로 활용하는 이점이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FNC엔터는 지난 2013년 연예인 지망생과 예술대학 지원자 등을 대상으로 노래와 춤, 연기 등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FNC 아카데미’를 출범시켰다.

FNC 아카데미는 현재 강남과 홍대, 대구 등 세 곳에서 운영 중이다. 이달부터 중국 상하이에서도 FNC GTC(글로벌트레이닝센터)가 설립돼 앞으로 해외 사업을 통한 수익도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위기는 언제든 올 수 있다

올해도 빠른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미래가 마냥 ‘장밋빛’으로만 장식될 수는 없다. 특히 FNC엔터 못지 않게 빠른 속도로 컸던 대형 기획사들이 최근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FNC엔터 역시 장기적으로 보면 암초에 부딪힐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주전선수'들의 세대교체다. 주력 그룹의 부침(浮沈)에 따라 회사 전체의 실적이 크게 움직이는 연예기획사의 특징을 감안하면, 현재 회사의 충실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는 FT아일랜드와 씨엔블루가 부진할 경우 이를 대체할 그룹이 나타나지 못하면 실적 개선 흐름이 꺾일 수 있다. 특히 두 주력 그룹 모두 남성멤버로만 구성돼 있어 몇 년 뒤 병역문제로 인해 활동이 중단될 가능성이 있는 점은 FNC가 계속해서 고민해야 될 숙제다.

올 상반기 데뷔하는 엔플라잉은 제3의 대표선수가 될 수 있을까.

두 그룹에 이은 회사의 차세대 먹거리가 돼야 할 엔플라잉이 선보일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크로스오버 밴드 음악’이 얼마만큼 인기를 끌 수 있을 지도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 예로 SM도 2000년대 초반 주력이었던 H.O.T와 S.E.S가 해체될 당시,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했던 블랙비트와 밀크, 천상지희 등의 그룹이 두각을 보이지 못해 한 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드라마 제작 사업에 따른 비용 부담 증가도 문제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드라마 제작이 매니지먼트 사업에서 효과가 크다면 왜 연기자 중심의 많은 기획사들이 여기에 뛰어들지 않았겠느냐”며 “드라마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 막대한 비용만 투자한 채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미미한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시장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FNC엔터가 성장성 측면에서 이점이 많다는 평가가 많다. 후발주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SM과 YG, JYP 등 선배 격인 회사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는 피한 채 장점만 고스란히 습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YG 등 일부 대형사들이 명품 사업 등 본업 이외의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FNC엔터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중심으로 한 사업 통합을 오히려 더 강화하고 있다.

FNC 엔터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정명훈 부대표는 “현재 구성 중인 사업 시스템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여 재무구조와 실적을 개선시키는데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