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하남 미사강변리버뷰자이' 모델하우스 앞에서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 5~6명이 관람객들을 붙들고 명함을 돌렸다. 이들은 "분양가보다 프리미엄이 5000만~1억5000만원이 붙을 것"이라며 "분양권을 팔 생각이면 꼭 연락 달라"고 호객 행위를 했다. 이날 오전 10시 문을 연 이 모델하우스에는 오후 6시까지 5000명 넘는 인파가 몰리며 온종일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오후 3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8층 가전 매장에는 전기밥솥 등을 사기 위해 중국인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하지만 같은 시각 국내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3층 여성 의류 매장에는 점원들이 손님보다 많을 정도로 한산했다.

정부가 경기 살리기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만 쏠리면서 내수(內需) 경기의 불균형이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내수 소비 위축이 갈수록 심각해져 '돈맥(脈)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아파트 거래 급증, 경매도…부동산은 활황

최근 부동산 시장은 과열을 우려할 정도다. 무엇보다 주택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1~3월 서울의 아파트 매매거래는 총 2만8494건으로 실거래가를 조사한 2006년 이후 가장 많았다. 작년 같은 기간(2만2856건)보다 25%나 늘었다. 과거처럼 집값이 폭등하지는 않지만, 거래량이 늘면서 집값도 완만히 오르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매매가와 전세금이 함께 오르는 전형적인 상승장의 모습"이라며 "최근 금리 인하가 부동산 투자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권 시장과 법원 경매시장도 들썩거린다. 올 들어 서울 아파트 분양권 전매 거래량은 1414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0%나 늘었다. 경매로 나온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7년 만에 최고인 91.7%까지 치솟았다. 이창동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수도권에서 감정가보다 낙찰가가 높은 고가(高價) 낙찰 비율이 올해는 30%를 넘어섰다"며 "집값이 상승세를 보이자 조급한 마음에 경매에 뛰어드는 투자자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식료품도 안 사" 울상

유통업계는 부동산 시장과 딴판이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각 가정에서 소득 중에 소비로 쓰는 비중을 나타내는 '평균소비성향'은 작년 1분기 74.5%에서 계속 줄어 4분기엔 71.5%까지 떨어졌다. 자신이 쓸 수 있는 돈 100만원 중 70만원만 쓴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올해 초 2주 넘게 '신년(新年) 세일'을 진행한 백화점업계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메이저 3사의 세일기간 매출 성장률이 고작 1% 안팎에 그쳤다. 2012년 이전까지만 해도 성장률이 최소 두 자릿수가 넘었다. 올 1~2월 전국 백화점 전체 판매액도 4조752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4% 정도 줄었고, 대형마트·편의점 등을 포함한 전체 소매업체 판매액은 3321억원 감소했다. 이종훈 이마트 마케팅팀장은 "고객들이 설이나 추석 때만 반짝 지갑을 열고 평소엔 꼭 필요한 식료품 구매에도 씀씀이를 줄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돈맥경화로 소비 확대 안 일어나

초(超)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과거엔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소비 지출도 늘어나는 '자산효과(wealth effect)'가 뚜렷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과거처럼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른다는 확신이 없기에 부동산 호황에도 소비자들이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소비 침체는 실물경제에 돈이 흐르지 않는 '돈맥경화'로 이어지고, 기업들이 신규 투자와 고용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김숙경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경우가 늘면서, 부채 상환 부담으로 가정에서 쓸 수 있는 돈은 오히려 줄어든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경영학)는 "요즘 30~40대는 집 사는 것은 포기하고 자동차나 해외여행에 더 가치를 두는 경우가 많다"며 "부동산 시장 호황에도 주력 소비계층의 자산 가치에 큰 변화가 없는 것도 소비 불황의 요인으로 꼽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