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기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세계 최대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업체인 페이스북은 지난달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개발자대회 'F8'에서 "머리에 쓰면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오큘러스 리프트'를 연내에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이를 위해 작년 가상현실 기기 업체 '오큘러스'를 23억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가상현실이란 개인이 어디에 있든 원하는 시간·장소를 생생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한국 서울에 있는 집 안방 침대에 누워서도 가상현실 기기만 착용하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 우주 공간 등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다. 기존에도 평면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볼 수 있었지만, 가상현실은 3D 입체 영상을 통해 생생히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삼성전자의 가상현실 기기 ‘기어 VR’을 사용하는 장면. 이 제품을 쓰고 콘텐츠를 보면 마치 현실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느낌을 받는다.

페이스북 저커버그 "올해가 가상현실 원년"

페이스북은 새롭게 떠오르는 가상현실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개발자대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직접 가상현실용 콘텐츠를 선보였다. 저커버그는 이 콘텐츠를 '원형 비디오'라고 지칭하면서 무대에서 시연했다. 공중에서 도시를 촬영한 이 비디오는 사람이 시선을 옮길 때마다 시점이 달라졌다. 이를 통해 마치 사용자들이 공중에 떠서 도시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저커버그 CEO는 "가상현실이라고 하면 게임을 떠올리지만, 앞으로는 비디오가 더욱 몰입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현실은 페이스북이 줄곧 주장하는 '연결'이라는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페이스북은 세계를 인터넷을 통해 하나로 연결하고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가상현실이다. 페이스북의 마이크 슈뢰퍼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가상현실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나라에 떨어져 있는 연인이나 친한 친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 등이 가상현실 기기를 통해 함께 있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슈뢰퍼 CTO는 "사람들이 진짜로 그곳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목표를 위해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은 이번 행사에서 다양한 가상현실 기기와 콘텐츠를 시연했다. 특정 기기를 머리에 쓰면 우주선의 조종 계기판과 각종 버튼, 비상 경보음, 경고등이 눈앞에 펼쳐져 마치 방금 발사한 우주선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대한 공룡이 입을 벌린 채 다가와 머리 위를 지나다니는 듯한 경험도 제공했다.

삼성전자·구글·소니 등 IT 업체들 연이어 뛰어들어

페이스북보다 한발 앞서 가상현실 기기를 선보인 곳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작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전자제품 전시회 IFA에서 '기어 VR'을 선보였다. 오큘러스와 공동 개발한 이 기기는 갤럭시노트4를 끼워서 사용하는 형태다. 삼성전자는 올해 갤럭시S6를 출시하면서도 가상현실 기기 신제품을 출시했다.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감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가상현실 기기의 판매량도 늘어날 것이란 전망에서다.

구글의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는 지난달 13일(현지시각)부터 360도 전방위를 촬영한 동영상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가상현실 기기를 쓰고 유튜브에 접속해 이 동영상을 재생하면 바로 생생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 동영상에서 가상현실로 서비스를 확대한 것이다. 구글은 작년 개발자대회에서 종이 박스 형태의 가상현실 기기를 선보였다. LG전자는 이 제품을 국내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일본 소니는 게임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 가상현실 기기가 가장 큰 효과를 얻는 분야는 게임이다. 액션 게임이나 슈팅 게임(총이나 무기를 사용하는 게임) 등은 평면 화면과 입체 화면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4' 게임기와 연계해 사용하는 가상현실 기기를 '프로젝트 모피어스'라는 이름으로 개발하고 있다. 착용자가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면 기기도 0.018초 만에 반응해 마치 실시간으로 현장에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임·동영상·패션 등으로 확장

IT 업체들이 연이어 가상현실 서비스를 내놓는 이유는 향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는 사람들이 콘텐츠를 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현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매물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교육계는 현장 실습을 가상현실로 대체할 수 있다. 패션 디자이너 역시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미리 입어본 것 같은 경험을 하면서 고객들이 선호하는 옷을 만들 수도 있다.

성인물 시장도 가상현실을 재빨리 받아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동영상을 감상하는 시점이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물 업계는 다른 콘텐츠 업계보다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다. 과거 화질을 크게 높인 블루레이 기술을 가장 많이 활용했고, 안경형 스마트 기기인 '구글 글라스'를 이용한 성인물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성인물 시장이 커지면 오히려 가상현실 기술이 음지로 묻힐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생생한 이미지·영상·음성 등을 통해 마치 현실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기술. 실제 상황이라고 착각할 만한 입체 영상을 보여주면 두뇌가 실제로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