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올해부터 5억원 이상 고액(高額) 등기 임원의 단순 보수 액수 외에 개인별 성과 목표와 성과 달성률 등을 상세하게 공시하라"고 요구했다.

3월 31일 2014년도 상장사 등기이사(퇴직자·사외이사·감사 포함)들의 개인별 보수 제출 시한을 맞아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보수 공개를 한 오너 경영인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허창수 GS 회장 등 총 5명이었다. 재계 관계자들은 "지금 같은 제도에서는 연봉을 공개하는 오너 경영인만 손해를 본다"며 "이런 식이라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고 말했다.

◇곤혹스러운 오너 경영진과 임원들

각 기업이 31일 금융 당국에 제출한 연봉 공개에 따르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현대차·현대건설·현대제철 등 계열사 3곳으로부터 215억7000만원의 보수를 받아 지난해 국내 기업인 연봉(보수총액) 1위에 올랐다. 여기에는 정 회장이 현대제철 등기이사를 사퇴하며 받은 퇴직금 95억원이 포함됐다. 퇴직금을 제외할 경우 정 회장이 받은 연봉은 120억7000만원 남짓하다. 이는 지난해 전문 경영인 가운데 최고액 연봉 수령자인 삼성전자의 신종균 사장(145억7200만원) 보다 25억원 정도 적은 것이다.

오너 경영인 중 2위와 3위는 김승연 한화 회장(178억9700만원)과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92억3100만원)이었다. 한화 측은 "김승연 회장은 집행유예 확정 후 ㈜한화 등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면서 받은 퇴직금(143억8000만원)이 포함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 부문 사장 등은 등기이사가 아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만 유일하게 등기이사로 등재해 26억1500만원을 받았다고 신고했다.

경영인들이 연봉 공개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반(反)기업 정서 탓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기업인과 부자에 대한 반감(反感)이 강한 상황에서 대기업 오너 연봉 공개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며 "꼭 이런 식으로 반기업 정서를 부추겨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연봉 공개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전문 경영인들도 마찬가지다. 한 대기업 사장은 "내 월급봉투 전체를 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같은 그룹 내에서도 최고경영자끼리 비교하며 결국 망신 주자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주주총회에서 임원 보수를 공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지금처럼 전 국민에게 누가 보수를 많이 받는지 보라는 식으로 이벤트를 벌이는 것은 일종의 '마녀사냥'"이라고 말했다.

◇'정보공개 강화' vs '기업 비밀 침해' 논란

제도 자체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일부에선 고액 임원 보수 공개안을 더 정교하고 더 자세히 기술하는 방식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현재는 등기이사만 보수를 공개하고 있는데 이사 여부와 상관없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인사에 대해선 예외 없이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다. 이들은 그 근거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 주요 임원 보수를 공개하는 이유가 정당한 이유 없이 거액 연봉을 챙겨가는 것을 주주들이 막기 위해서란 점을 든다. 2011년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 때 금융 위기 책임을 망각한 임원들이 거액의 퇴직금을 가져간 데 대한 맹렬한 비난이 제기됐었다. 경제개혁연대의 채이배 회계사는 "주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지금보다 더 자세하게 고액 임원의 연봉 산출 과정을 공개하고 미등기 고액 임원도 보수 공개를 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일본·독일 등에서 임원 보수 공개와 한국의 제도와 상황은 다르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미국·독일 등의 기업들은 경영진이 자체적으로 임원 보상위원회를 만들어 임원 보수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견제 장치가 필요하지만 한국에선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보수 한도를 안건으로 정해 통과시키게 돼 있다는 것이다. 주주총회라는 견제 장치가 있는데도 더 나아가 일률적으로 임원 개개인의 보수 현황을 밝히는 것은 기업의 영업 비밀을 침해한다는 논리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시행하는 임원 보수 공개 제도를 그대로 시행하는 것보다 부실기업이나 정부의 구제 금융을 받는 기업의 경우에만 임원 연봉 공시를 강화하는 게 더 타당하다"고 말했다.

☞등기이사(사내이사)

이사회에 참여해 업무 집행의 의사 결정, 주총 소집, 중요 자산의 처분과 양도, 대규모 자산 차입 등 경영상 주요 결정을 내린다. 그에 따른 법적 지위에 걸맞게 책임도 진다. 등기이사 연봉 공개 의무는 연간 보수 5억원이 넘는 상장기업 등기 임원에게만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