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한 마리, 한 마리는 보잘것없는 지능을 갖고 있지만 무리를 이루면 누구도 무시 못할 능력을 발휘한다. 개미는 동료들과 함께 무거운 짐을 옮기고 길이가 긴 굴을 파는 일도 거뜬히 해결한다. 이런 개미의 '집단지능(swarm intelligence)'을 이용한 로봇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각종 생산공장과 창고에서 중앙컴퓨터가 일일이 통제하지 않아도 수많은 로봇이 개미처럼 각자 알아서 일사불란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D 프린터로 만든 개미 로봇

독일의 자동화기기 전문업체 페스토(Festo)가 지난 25일 공개한 개미 로봇 '바이오닉앤트(BionicANT)'가 대표적이다. 개미처럼 생긴 조그만 본체에 전자회로를 인쇄한 로봇이다. 연구진은 소형화와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개별 로봇에는 몇 가지 규칙으로 이뤄진 단순한 지능만 부여했다. 이를테면 길을 가다 벽을 만나면 돌아가고, 먹이로 지정된 물체를 만나면 물고 정해진 위치로 옮긴다는 식이다. 로봇들은 각자 먹잇감에 도달해 집게 턱으로 물었다. 무선통신으로 위치를 파악해 동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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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로봇의 길이는 13.5㎝, 무게는 105g이다. 머리에는 입체 카메라가 있어 사물을 인지한다. 물체를 무는 집게 턱과 6 개의 다리는 압전(壓電) 소자로 만들었다. 압전 소자에 전류가 흐르면 마치 오징어 다리가 불판 위에서 휘어지듯 형태가 바뀐다. 전류를 흘렸다 끊었다 하면 로봇 다리가 접혔다 펴지면서 움직일 수 있다. 배에는 광(光)마우스처럼 광센서가 있어 바닥의 적외선 표시를 감지한다. 이마에 나 있는 더듬이는 충전(充電) 장치로, 전차(電車)처럼 전선에 접촉해 전력을 공급받는다. 연구진은 개미 로봇의 몸과 표면의 전자회로 대부분을 3D 프린터로 찍어냈다.

개미의 집단지능을 모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2월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흰개미를 모방한 블록 쌓기 로봇을 개발했다. 흰개미는 이미 흙이 차 있으면 바로 옆으로 가서 흙을 내려 놓는다. 이런 단순한 지능이 수십만~수백만 모여 높이 2.4m의 집을 만든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작년 8월 로봇의 수를 1000여대로 늘렸다. 역시 다른 로봇과 맞닿으면 멈추고, 무리의 가장자리에서만 이동할 수 있다는 정도의 낮은 지능만 줬는데도 알파벳 모양대로 정렬하는 데 성공했다.

물류창고에서 빛 보는 집단지능

개미의 집단지능은 물류창고 운영에 적용되고 있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물류창고에 '키바'라는 이름의 로봇 1만5000여대를 운용하고 있다. 이 로봇은 물건을 쌓아둔 선반(팰릿)을 들어서 옮기는 일을 한다.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도 이와 비슷한 물류창고용 로봇을 개발했다. 물건을 이동시키라는 지시를 받으면 로봇끼리 서로 무선통신을 한다. 어떤 로봇이 물건을 전달하면 가장 빠르게 옮길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각 로봇은 자기 근처에 누가 가장 가까이 있는지만 안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정보를 공유하면 결국 가장 빠른 이동 경로를 찾아낸다.

프라운호퍼연구소는 물류창고에서 재고(在庫) 조사를 하는 비행 로봇도 발표했다. 비행 로봇은 적재물 위를 날면서 물건에서 나오는 상품 정보를 수신해 재고를 조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로봇이 벽이나 다른 로봇과 충돌하지 않게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자동화 업체 페스토는 "나비 로봇은 창고 곳곳의 적외선 카메라와 적외선 신호를 주고받으며 충돌을 회피하는 기능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