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흰 쌀밥’을 부의 상징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흰 쌀밥의 자리는 곧 보리, 현미 등 잡곡을 섞어 먹는 식생활이 대신했다. 혼식(混食)이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잇달아 나오면서 생긴 일이다. 최근에는 보리, 현미 등 익숙한 국내 잡곡의 자리를 외국산 곡물이 대신하고 있다.

퀴노아, 아마란스, 렌틸콩, 칙피 등 과거 보기 어려웠던 외국산(産) 곡물들은 일명 ‘수퍼 곡물'로 불린다.단백질·섬유소가 풍부하고, 필수 아미노산·비타민 같은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수퍼 곡물’로 각광받고 있는 아마란스(왼쪽)과 퀴노아(가운데). 오른쪽은 국내에서도 재배되는 귀리다.

관세청이 이달 발표한 ‘최근 5년 해외 직구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14년 곡물류 수입 건수는 관세청이 처음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한 2009년보다 9343% 증가했다.

수퍼 곡물의 대표격인 퀴노아는 2013년 1년간 12톤이 한국에 들어왔지만, 지난해에는 1년간 111톤이 수입됐다. 1년 새 수입량이 10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퀴노아는 볼리비아·칠레·페루 등 남미 고산지대에서 주로 먹는 곡물이다. 쌀보다 작고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쌀과 비교해 단백질은 2배, 칼륨은 6배, 칼슘은 7배, 철분은 20배가 많다.

유엔국제농업기구(FAO)이 지난해를 ‘세계 퀴노아의 해’로 정할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관세청은 “퀴노아 등의 곡물류가 우유에 버금가는 높은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으면서도 여성들의 다이어트 등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지면서 최근 2년 새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마란스’는 퀴노아의 사촌격인 곡물이다. 남미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5000년 전부터 인디오들의 밥줄 역할을 해왔다. 칼슘 함유량이 쌀보다 3배 더 많고, 칼슘의 흡수를 돕는 ‘라이신’이 풍부해 어린이 뼈 성장에 좋다. 여기에 식물성 스쿠알렌, 폴리페놀, 토코트리에놀 등 항산화 성분도 다량 함유돼 있다.

렌틸콩(lentil bean)은 방송인 이효리가 즐겨먹는 곡물로 소개되면서 다이어트 식단을 짜려는 국내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고단백 식품이다. 학명(Lens Culinaris)을 따 '렌즈콩'이라 불리기도 한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종합하면 렌틸콩 수입량은 2013년 366톤에서 2014년 1만2196톤으로 33배 급증했다.

렌틸콩은 100그램당 같은 분량의 쇠고기보다 많은 단백질이 가지고 있다. 여기에 사과보다 21배 더 풍부한 식이섬유를 가진 것도 장점이다. 비타민 B와 풍부한 엽산으로 임산부들의 건강 유지에도 효과가 좋다.

칙피 역시 콩의 한 종류다. ‘이집트콩’, ‘병아리콩’으로 불리는 이 곡물은 밤과 비슷한 맛이 나고 콩 비린내가 적다. 칙피는 칼로리가 낮은 반면 단백질 함량이 높아 채식 다이어트를 할 때 식물성 단백질의 좋은 공급원이 된다. 채식을 중요시하는 인도, 중동 등지에선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식재료다. 국내에선 '지중해식 식단'의 주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렌틸콩(lentil bean)은 다이어트 식단을 짜려는 국내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학명(Lens Culinaris)을 따 ‘렌즈콩’이라 불리기도 한다.

수퍼 곡물들은 경기불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 속에서도 매출이 급증하는 추세다. 이마트가 올해 1~2월 수퍼 곡물 매출을 살펴본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관련 매출이 352.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영양 곡물 부문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도 2014년 3.8%에서 올해 16.4%로 4배 넘게 늘었다.

반면 국산 잡곡의 인기는 주춤하고 있다. 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산 녹두 가격은 올해 3월 기준 1킬로그램당 지난해보다 8% 저렴해졌다. 국산 팥 1킬로그램의 평균 소매가격은 지난해보다 27%, 최근 5년 평균 가격보다 31% 하락했다.

손미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올해 전체 콩 재배 의향면적은 2014년보다 6.4% 줄어든 6만9838헥타르 정도 될 것"이라며 "2014년산 국산 콩 도매가격도 전년 대비 15.4% 떨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