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국제팀 유윤정기자입니다. 오늘은 샤넬의 콧대를 꺾은 직구족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해외 명품 샤넬이 3월 17일 한국에서 가격을 내렸습니다. 샤넬이 한국에 진출한 이래 사실상 처음입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홍콩, 베트남, 러시아 등에서도 가격을 낮췄습니다. 샤넬은 면세점에도 잘 입점하지 않을 정도로 ‘노세일’ 정책을 고수해 왔던 터라 20% 가격 인하에 관련업계 사람들과 소비자들은 예상치 못한 뉴스라고 받아들이는 듯 합니다.

가격할인에도 불구하고 400만~500만원대를 훌쩍 넘길 정도로 고가품인 샤넬 매장에는 물건을 사려는 소비자와 이미 산 핸드백을 환불하려는 소비자가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루는 광경도 펼쳐졌습니다.

샤넬은 왜 콧대를 낮춘 걸까요. 샤넬측은 국가별 가격 정책을 버린 ‘글로벌 가격 일치화 전략’이라는 변명을 내놨지만 사실은 말 못할 고민이 많습니다. 샤넬 매출의 절반 이상은 아시아에서 나옵니다. 중국과 한국 고객이 많습니다.

이런 심리를 잘 아는 샤넬은 유독 중국과 한국에서 이른바 ‘바가지 상술’을 펼쳤습니다. 본고장인 유럽과 비교해 보면 적게는 30%, 많게는 60%까지 비싸게 팔았으니까요. 샤넬 11.12백의 경우 유럽은 370만원, 미국은 490만원대인데 한국에선 600만원 넘게 줘야 살 수 있었습니다. 가격이 싸야 잘 팔린다는 사실은 전통시장 구석에서 야채를 파는 상인도 몸소 익힌 원리입니다.

이런 논리가 샤넬에겐 안 통했습니다. 비싸도 잘 팔렸으니까요. 명품에게 따라다니는 과시욕과 허영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격이 비싸야 수요가 늘어나는 사치재의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이죠. 한국 여성들이 결혼할 때 예물로 요구하는 품목 중 하나가 샤넬백일 정도입니다. 여성들에게는 로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안 팔리기 시작합니다. 소비자들이 똑똑해졌기 때문입니다. 직구족들은 해외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서 샤넬을 직접 구입하고 또 해외 가격과 국내 가격을 일일이 비교하며 '가격 거품'을 지적했습니다. 온라인 '직구족'의 등장은 사치재를 보통재로 바꿔버릴 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샤넬이 병행수입과 직접구매를 통해 저렴하게 물건을 사는 소비자를 막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브루노 파블로스키 샤넬 패션 부문 대표도 “가격을 동일하게 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명품도 잘 팔려야 비싼 가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명품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샤넬이 결국 투항하고 가격을 내리게 된 건 '직구족'과의 끊임없는 전쟁 때문인 셈입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어떤 해외 업체라도 한국 직구족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