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렌즈만 있으면 사진을 정말 잘 찍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했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다. 사진을 배우다 보면 한 번쯤은 관심이 카메라 장비에 쏠리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이 거쳐 가는 과정이다.
사실, 자신의 작업에 알맞은 카메라를 고르고, 그 카메라를 완벽하게 다루려면 장비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지나친 장비 욕심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장비 욕심은 곧잘 장비 자랑으로 이어진다. 어떤 카메라가 더 폼이 나 보일까?
카메라에 이런저런 스티커를 붙이는 분들이 있다. 카메라에 붙이는 스티커의 기원은 아마도 신문사나 통신사의 기자들일 것이다. 사진기자들은 흔히 ‘OO일보’니 ‘OO통신’이라고 쓴 큼지막한 스티커를 카메라에 붙이고 다닌다. 내가 분명히 경험한바, 그 스티커의 역할이란 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마감한 후에는 필시 부장의 다정한(!) 목소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표시였다.
그래도 폼이 나 보이지 않느냐고? 어딘가 소속되어 있다는 것으로 내 사진 실력을 증명하려는 거라면, 글쎄 아무래도 없어 보인다고 말할밖에.
카메라에 붙이는 것 중에 더 눈에 띄는 게 있다. 검정 천 테이프로 카메라를 온통 친친 감싸는 방법이다. 아예 카메라 로고마저 가려버린다. 험한 취재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가던 외국 기자들이 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렇게 테이프로 카메라를 싸면, 먼지가 덜 들어간다는 사진가들도 있고, 몸체가 다 깨질 만큼 충격을 받았는데도 문제없이 촬영할 수 있었다는 기자도 있고, 나중에 중고로 팔 때 테이프를 벗겨 내고 깨끗한 상태로 팔았다는 사진가도 있다. 그런 카메라를 사지 않도록 주의하시라.
반대의 경우도 있다. 사진가 선배 한 분은 비싼 라이카 카메라를 사자마자 벽돌담에 대고 긁어댔단다. 비싼 카메라라서 더 아끼게 될까 봐, 과감하게 막 쓰자는 각오를 카메라에 세긴 것이다.
명기라 불리는 라이카는 사실 아주 불편한 카메라다. 그에 비하면 요즘 카메라들은 대단히 빠르고 편리하다. 사진기자들은 그중에서도 아주 빠르게 동작하는 큰 카메라를 사용한다. 이유는 하나다. 사진기자들은 어떤 순간도 놓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동호인이 그런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좀 과해 보인다.
게다가 그 큰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목이 아프다. 아직 목 디스크의 고통을 모르시는 초보임이 분명하다. 당장 카메라를 목에서 내리시라.
뭐든지 다 찍어야 하는 사진기자들을 위한 장비 중 또 하나가 줌렌즈이다. 줌렌즈란 28-80이니 24-105니 하면서 초점 거리가 변하는 렌즈들을 말한다. 하나의 렌즈로 여러 개의 화각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줌렌즈는 아무리 좋아도 왜곡의 정도나 화질 면에서 단렌즈에 못 미친다. 그럼에도 사진기자들이 줌렌즈를 쓰는 이유는 역시 하나다. 뭐든지 다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에 있어서 진정한 고수라고 하면 뭐든지 다 찍는 사진가가 아니라, 내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따라서 자기 사진에 맞는 카메라 하나와 렌즈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 좋다. 그 렌즈로 찍을 수 없는 장면은 버리면 된다. 그게 더 중요하다. 내 카메라와 내 렌즈는 개성 있고 일관성 있는 내 사진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하여 초고수가 되면 마침내 장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한 사진가 선배는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가 제일 좋다고 한다. 그가 진정한 초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