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이갑철의 사진. 그는 요즘 오래된 필름 카메라 한 대와 80mm 단렌즈 하나로 도시를 찍고 있다. 80mm! 작년 한 해 동안 그는 부산을 찍었다. 지금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시가 진행 중이다.

‘저런 렌즈만 있으면 사진을 정말 잘 찍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했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다. 사진을 배우다 보면 한 번쯤은 관심이 카메라 장비에 쏠리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이 거쳐 가는 과정이다.

사실, 자신의 작업에 알맞은 카메라를 고르고, 그 카메라를 완벽하게 다루려면 장비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지나친 장비 욕심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장비 욕심은 곧잘 장비 자랑으로 이어진다. 어떤 카메라가 더 폼이 나 보일까?

카메라에 이런저런 스티커를 붙이는 분들이 있다. 카메라에 붙이는 스티커의 기원은 아마도 신문사나 통신사의 기자들일 것이다. 사진기자들은 흔히 ‘OO일보’니 ‘OO통신’이라고 쓴 큼지막한 스티커를 카메라에 붙이고 다닌다. 내가 분명히 경험한바, 그 스티커의 역할이란 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마감한 후에는 필시 부장의 다정한(!) 목소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표시였다.

그래도 폼이 나 보이지 않느냐고? 어딘가 소속되어 있다는 것으로 내 사진 실력을 증명하려는 거라면, 글쎄 아무래도 없어 보인다고 말할밖에.

카메라에 붙이는 것 중에 더 눈에 띄는 게 있다. 검정 천 테이프로 카메라를 온통 친친 감싸는 방법이다. 아예 카메라 로고마저 가려버린다. 험한 취재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가던 외국 기자들이 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렇게 테이프로 카메라를 싸면, 먼지가 덜 들어간다는 사진가들도 있고, 몸체가 다 깨질 만큼 충격을 받았는데도 문제없이 촬영할 수 있었다는 기자도 있고, 나중에 중고로 팔 때 테이프를 벗겨 내고 깨끗한 상태로 팔았다는 사진가도 있다. 그런 카메라를 사지 않도록 주의하시라.

반대의 경우도 있다. 사진가 선배 한 분은 비싼 라이카 카메라를 사자마자 벽돌담에 대고 긁어댔단다. 비싼 카메라라서 더 아끼게 될까 봐, 과감하게 막 쓰자는 각오를 카메라에 세긴 것이다.

정은진씨는 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사진 작업을 했다. 인터뷰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그녀의 카메라는 그녀가 얼마나 험한 곳에서 활동하는지 말해주는 듯하다.

명기라 불리는 라이카는 사실 아주 불편한 카메라다. 그에 비하면 요즘 카메라들은 대단히 빠르고 편리하다. 사진기자들은 그중에서도 아주 빠르게 동작하는 큰 카메라를 사용한다. 이유는 하나다. 사진기자들은 어떤 순간도 놓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동호인이 그런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좀 과해 보인다.

게다가 그 큰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목이 아프다. 아직 목 디스크의 고통을 모르시는 초보임이 분명하다. 당장 카메라를 목에서 내리시라.

뭐든지 다 찍어야 하는 사진기자들을 위한 장비 중 또 하나가 줌렌즈이다. 줌렌즈란 28-80이니 24-105니 하면서 초점 거리가 변하는 렌즈들을 말한다. 하나의 렌즈로 여러 개의 화각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줌렌즈는 아무리 좋아도 왜곡의 정도나 화질 면에서 단렌즈에 못 미친다. 그럼에도 사진기자들이 줌렌즈를 쓰는 이유는 역시 하나다. 뭐든지 다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에 있어서 진정한 고수라고 하면 뭐든지 다 찍는 사진가가 아니라, 내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따라서 자기 사진에 맞는 카메라 하나와 렌즈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 좋다. 그 렌즈로 찍을 수 없는 장면은 버리면 된다. 그게 더 중요하다. 내 카메라와 내 렌즈는 개성 있고 일관성 있는 내 사진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하여 초고수가 되면 마침내 장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한 사진가 선배는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가 제일 좋다고 한다. 그가 진정한 초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