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덕'이란 말을 처음 본 건 중학생 아들 카카오톡 문패에서다. "밀가루로 만든 떡이냐"고 묻자 어이없어한다. '밀리터리 덕후(오타쿠)', 군사 무기에 관심 많은 마니아란다. 그러고 보니 카톡 안에 온갖 탱크와 미사일 사진이 잔뜩 들었다. '극혐'이란 말도 아이에게 배웠다. 극히 혐오한다는 말을 줄였다. 며칠 전 학부모 총회에선 아이들이 선생님을 '쌤, 쌤' 하며 불러대는 통에 화들짝 놀랐다. 옛 어르신들 봤으면 하늘 같은 스승을 동네 강아지 부르듯 한다고 기함할 일이다.

▶'언어 파괴'라는 비난을 받지만 신조어는 당대 사회를 비추는 거울 구실을 한다. 조퇴(조기퇴직), 명퇴(명예퇴직), 황태(황당한 퇴직), 동태(한겨울에 퇴직), 알밴명태(퇴직금 두둑이 받은 명퇴)는 금융 위기가 닥친 2008년 쏟아져나왔다. 수그리족, 트통령(트위터 대통령), 약정승계남, 애플빠는 스마트폰과 SNS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2011년쯤 생겨났다.

▶연애관과 이성관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신조어도 햅쌀 나오듯 해마다 생산된다. 생강녀(생활력이 강한 여자), 깡블리(깡다구 있지만 '러블리'한 여자)는 남자들 이상형이 생계형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여자들이 원하는 남자는 '능청남'이란다. 능력 있고 청소도 잘하는 남자! '삼시세끼'에서 요리를 뽐내 우상이 된 배우 차승원 덕분에 '차줌마'가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을 눌렀다.

▶신조어가 얼마나 많으면 활용 능력을 측정하는 신조어 능력 시험 앱까지 등장했을까. 국립국어원도 '사전에 없는 말 신조어'라는 책을 낸 데 이어 매년 새로 생긴 말을 모아 발표하기 시작했다. 지난 1년 나온 단어 중엔 뇌섹남(뇌가 섹시해 지적인 남자), 금사빠녀(금방 사랑에 빠지는 여자) 같은 줄임말부터 앵그리맘처럼 외래어도 많다. 경기 불황을 반영한 임금 절벽, 오포세대(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집 포기한 세대)도 눈에 띈다.

▶바른 말 고운 말을 장려해야 할 국립국어원이 비속어를 권장하느냐는 비난도 있다. 사전학자들 생각은 다르다. 남길임 경북대 교수는 "새로운 언어가 생겨나는 이유는 반드시 있다. 어느 분야에서 왜 생기고 소멸하는지 추적하면 사회·문화·정치의 속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도 핵꿀잼, 인생짤 같은 말은 도통 모르겠다. 문법 파괴를 따지기 앞서 귀에 닿는 느낌이 불쾌하다. 넉살과 풍자 넘치면서도 격도 갖춘 새말들로 사전이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