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사는 양봉업자 시더 앤더슨은 자동으로 벌꿀을 채취하는 벌통을 개발해 지난 2월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인디고고'를 통해 자금 모금에 나섰다. 두꺼운 보호복과 장갑 없이 마치 술통에서 맥주를 따르듯 간단하게 벌꿀을 채취하는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애초 7만달러 모금을 목표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하루 만에 200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모았고, 현재는 700만달러(약 77억원)를 넘어 대박이 났다.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십시일반(十匙一飯) 투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펀딩 성공 사례가 해외에서 잇따르면서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도 창조경제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지분형 크라우드펀딩을 허용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정말 벤처기업 자금 조달과 일자리 창출의 만능 키가 될 수 있을까.

후원·대출형 위주… 한국서도 활발

위 사례에서 벌통 프로젝트에 돈을 댄 사람들은 무엇을 얻게 될까? 답은 회사의 주식이나 채권 등이 아니라 '벌통' 그 자체다. 600달러를 내면 나중에 벌통 하나를 통째로 받고, 350달러를 내면 벌통 부품 일부를 받는 식이다. 일종의 '선주문'인 셈이다.

이것이 크라우드펀딩의 한 유형인 '후원형'이다. 문화 예술 상품이나 기발한 프로젝트에 돈을 대고 공연 티켓 또는 시제품을 대가로 받는 방식이다. 미국 최대 크라우드펀딩 업체인 '킥스타터'와 '인디고고' 등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 크라우드펀딩으로 모금에 성공한 뒤 페이스북에 20억달러에 팔린 오큘러스 VR(가상현실기기 업체), 최초의 스마트 시계인 '페블워치' 같은 성공 스토리 대부분이 여기에서 나왔다. 한국에도 이 같은 후원형 펀딩 업체들은 이미 적지 않다. 2012년 설립된 '와디즈'에서는 태극기 이어캡(휴대전화 이어폰 단자에 꽂는 액세서리), 미아방지용 팔찌 등 100여건의 프로젝트가 모금액 달성에 성공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변호인'이나 '연평해전' 같은 영화들도 이런 방식으로 제작비 일부를 조달했다. 후원형 펀딩은 필요한 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장점 못지않게 '입소문'을 통해 제품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이 때문에 자금 조달에 큰 문제가 없어도 고객들의 반응을 미리 테스트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찾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의 또 다른 유형은 '대출형'이다. 돈이 필요한 개인이나 기업이 원금과 이자 상환을 약속하면 개인들이 각자 판단해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미국의 P2P(개인 간) 대출 사이트인 렌딩클럽은 '투자자는 안전하고 높은 수익이, 대출자는 빠르고 저렴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고 광고해 지금까지 76억달러의 대출을 성사시켰다. 국내에도 머니옥션, 팝펀딩 같은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업체들이 대부업으로 등록하고 영업 중이다.

지분형 크라우드펀딩이 '마법의 열쇠'될까

크라우드펀딩의 여러 유형 중 아직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금지돼 있어 논란이 되는 것은 '지분형' 크라우드펀딩이다. 투자자가 돈을 대고 기업이 발행한 주식이나 회사채를 받는 방식이다. 2년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일명 '크라우드펀딩법')도 지분형 크라우드펀딩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투자받는 기업 입장에서 지분형 방식의 장점은 ▲좀 더 많은 자금을 ▲연구개발(R&D)이나 시설 투자, 직원 채용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대출과 달리 정해진 기간 내에 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투자하는 개인 입장에서는 회사가 잘되면 소액의 투자로 대박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이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법안이 하루 빨리 통과돼야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활성화되고 벤처 창업 열풍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본다. 고용기 크라우드펀딩기업협의회장은 "대부분 벤처기업들은 대출로 창업 자금을 마련한 후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 전에 자금이 고갈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겪는다"면서 "미국처럼 이 시기에 자금을 댈 엔젤투자자가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크라우드펀딩은 창업자들에게 단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지지부진한 한국의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활짝 꽃필 것으로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신중론도 있다. 국내 벤처기업들이 굳이 미국의 킥스타터를 찾는 이유는 제도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훨씬 더 큰 시장과 투자자 풀(pool)이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 보호도 넘어야 할 숙제다. 창업 초기 기업일수록 장래가 불투명하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하기 때문에 투자에 많은 리스크가 존재한다. 미국은 지난 2012년 법을 제정하면서 연소득 10만달러 미만 투자자는 최대 2000달러까지만 투자할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자본시장연구원 천창민 박사는 "크라우드펀딩이 창조경제의 젖줄로 각광받고 있지만, 창업 기업 대부분이 몇 년 안에 망하고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하기도 어렵다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