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의료사고로 의료기기 개발 창업 결심했지만
제품 개발에 1년, 허가 받는데 1년, 신의료기술은 엄두 못내

▲휴대용 초음파는 스마트폰 크기로 인체 내부를 볼 수 있는 영상진단 장비다. 즉각적인 응급 진단을 가능하게 하고 의료사고를 막을 것으로 기대했다. /힐세리온 제공

“병원에 근무하던 2011년, 지체 장애인인 산모가 아프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 바로 초음파 검사를 했다면 생명을 살렸을텐데 안타깝습니다.”

헬스케어 벤처기업 힐세리온의 류정원 대표는 가천대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2009년부터 병원에서 근무했다. 어느 날 응급실 당직을 맡은 그는 환자 상태를 곧바로 알지 못해 의료사고가 일어나는 현장을 목격했다.

당시 병원 응급실에는 초음파기기가 없었다. 장비가 크고 무거워 실시간 이동이 불가능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산모가 검사실이나 다른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류 대표는 산모와 태아 모두 살리지 못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렵게 공부해 의전원에 진학했지만,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병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공대 재학 시절 벤처회사를 운영한 경험을 살려 창업을 결심했다. 언제 어디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초음파를 개발하기로 했다.

초음파기기는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주파수의 음파(2∼20㎒)를 인체에 쏜 다음, 반사된 초음파로 인체 내부를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장비를 말한다.

류 대표는 1년 연구개발 끝에 2012년 무선 초음파기기 ‘소논’을 개발했다. 이 제품은 스마트폰 크기로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다 언제든 꺼내 인체 내부를 볼 수 있는 장비다.

블루투스나 와이파이를 이용해 스마트폰, 컴퓨터로도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배터리를 충전해서 사용하면 된다.

의료기기업계에 따르면 휴대용 초음파는 큰 병원에 도착하기 전 개인 병원이나 구급차의 응급 진단을 도와준다. 정밀 검사를 받기 전 응급실에서 즉각적인 진단도 가능하다. 아프리카 등 초음파가 보급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유용하다. GE헬스케어 등이 휴대용 초음파를 만들었지만 무선으로 된 제품은 없었다.

류 대표는 “인체 내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초음파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며 “전 세계 의사들이 청진기 대신 초음파를 휴대하면 긴급 진단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고, 정확한 치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초음파 영상진단장치 시장 규모는 약 46억2000만 달러(약5조800억원)로 최근 7년간 연평균 3.1%로 성장했다. 2020년까지 연평균 4.4%, 62억 3000만 달러(6조8500억원)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휴대용 초음파는 예상 규모보다 더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류 대표는 창업보다 의료기기 규제가 힘들다고 지적한다. 류 대표가 처음 장비를 개발한 것은 2012년이지만, 복잡한 허가 절차로 지난해 출시가 가능했다. 보통 의료기기를 허가 받는데 1년 가량 소요되는 탓이다.

류 대표는 초음파 영상을 볼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까지 추가로 의료기기로 허가 받으면서 규제의 벽을 실감했다.

더 큰 문제는 이전에 없던 제품을 개발했지만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있다.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으면 초음파검사료에 제품 개발비가 반영되는 이점이 있지만, 추가로 1~2년 더 소요된다. 류 대표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이전 초음파와 같은 제품으로 승인을 받았다.

류 대표는 그동안 청년창업 지원으로 버텼다. 만일 올해 매출이 없으면 다시 병원에 취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진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이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 평가까지 받으면 제품 판매까지 최소 2~3년이 소요된다”며 “헬스케어 분야 창업이 활성화되거나 중소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이승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원은 “헬스케어 산업은 개인의 생명과 관련된 제품이 많아 규제가 필요하다”며 “대신 인체의 위험이 낮은 진단기기나 평소 건강관리를 위한 제품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