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토탈 리콜’의 기억 이식 장면.

영화 '인셉션'에는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 기억을 조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영화 같은 일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왔다.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꿈을 해킹하고 새로운 기억을 이식(移植)하는 동물 연구가 성공한 것이다. 연구가 발전하면 끔찍한 사고 이후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서 나쁜 기억만 골라 없애거나 반대로 좋은 기억을 심어서 나쁜 기억을 중화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정 장소에 호감 갖도록 기억 이식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카림 벤체넨 박사 연구진은 지난 9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서 "생쥐가 잠을 자는 동안 특정 장소에 호감을 갖도록 기억을 이식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생쥐의 뇌에 있는, 이른바 '장소 세포(place cell)'란 신경세포에 주목했다. 사람이나 동물이 한 번 가본 곳을 기억하는 것은 뇌 해마의 장소 세포가 장소마다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이 바로 이 장소 세포 발견자들에게 돌아갔다.

생쥐는 낮에 원이나 네모, 별 모양의 방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연구진은 방마다 어떤 장소 세포가 작동하는지 뇌 신호를 파악해 기록했다. 이를 통해 원형 방에 들어갈 때와 네모 방에 들어갈 때 나타나는 뇌 신호를 구별할 수 있게 됐다. 사람과 생쥐 모두 잠을 자는 동안 뇌가 낮에 겪은 일을 정리해 기억으로 저장한다. 연구진은 잠자는 생쥐의 뇌 신호를 관찰하다가 원형 방에 해당하는 장소 세포의 활동이 나타나면 바로 뇌 보상중추에 전기 자극을 줬다. 즉 원형 방의 꿈을 꾸면 보상중추가 자극돼 즐거움이나 행복감을 느끼도록 한 것이다. 나중에 잠에서 깨어난 생쥐는 다른 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원형 방으로 달려갔다. 원형 방에 호감을 가진 기억이 이식된 것이다.

◇무의식 조작하고 공포 기억 지워

잠자는 동안 기억을 이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아넬 아리지 박사 연구진은 수면 중 무의식을 조작해 금연에 이르게 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흡연자들이 잠자는 동안 담배 냄새와 함께 썩은 생선, 달걀 냄새를 맡게 했다. 꿈에서 썩은 냄새를 맡은 흡연자는 실험 후 1주일간 흡연량이 34% 줄었다. 꿈에서 무의식적으로 담배와 썩은 냄새를 연결해 기억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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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쥐 연구는 특정 장소에 대한 의식적인 기억을 이식했다는 점에서 금연 실험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벤체넨 박사는 "아직은 초보적인 기억만 이식할 수 있지만 연구가 발전하면 끔찍한 사고를 당해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생쥐 실험에서는 이미 그 가능성이 입증됐다.

미 UC샌디에이고 연구진은 지난해 '네이처'지에 "생쥐가 특정 환경에서 보이는 공포감을 빛으로 없애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생쥐에게 종소리를 들려주며 동시에 발에 전기 자극을 줬다. 그러면 나중에 생쥐는 종소리만 듣고도 몸이 얼어붙는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다.

공포감을 없애려면 종소리를 낮게 자주 들려줘 공포 기억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빛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먼저 생쥐가 공포 행동을 보일 때 뇌의 어느 부분이 작동하는지 알아냈다. 다음에는 뇌 청각(聽覺) 중추와 앞서 공포 담당 영역에 특정 파장의 빛에만 반응하는 단백질을 붙였다. 이제 종소리나 전기 자극 없이도 그 빛만 비추면 생쥐가 얼어붙었다. 공포 기억을 이식한 것이다. 반면 같은 곳에 전보다 낮은 주파수의 빛을 비추면 생쥐가 공포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공포 기억을 없앤 것이다.

일부에서는 기억 이식이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걱정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에게 맹목적인 호감을 갖도록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영국 연구진은 뇌에는 특정인을 기억하는 세포가 있음을 입증했다. 만약 그 신경세포가 작동할 때 보상중추를 동시에 자극하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좋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