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사기 전에 자신이 직접 써 보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다. 하지만 막상 매장에 나가보면 '뭐 보러 오셨어요' 하며 사방에서 말을 거는 영업사원들 때문에 여러 제품을 차분하게 만져보기가 힘들다.

최근 가전·통신 업계에는 이런 고객의 욕구를 반영해 편안하게 꾸민 '라운지형 매장'이 확산되고 있다. 라운지(lounge)란 소파·테이블·안락의자 등을 갖춰놓고 휴식이나 대화를 나누는 공간을 뜻한다. 라운지형 매장에서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제품들을 요모조모 살펴보다가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만 직원을 불러 물어보면 된다. 휴대폰 매장에 카페가 들어서고 자사 가구로 꾸민 레스토랑을 여는 등 다른 업종과 협력하는 매장도 늘고 있다.

라운지형 매장 확대하는 가전·통신업체들

게임 개발자 김현동(32)씨는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약속을 잡을 때면 KT '올레스퀘어'를 자주 찾는다. 이곳은 아이폰6·갤럭시노트4 같은 최신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IPTV(인터넷TV)나 가정용 와이파이(무선랜) 등 각종 IT(정보기술) 기기를 자유롭게 써볼 수 있는 라운지형 공간이다. 거실과 욕실, 침실, 사무실 등 다양한 테마로 인테리어를 해놓았다. 테이블마다 스마트폰 충전기도 놓여있다. 김씨는 "소파에 느긋이 앉아서 최신 제품을 이것저것 테스트해보기 좋다"고 말했다. KT는 서울 서초동과 홍대 입구, 부산 해운대 등에도 실내를 카페처럼 꾸며놓은 '올레 애비뉴'를 운영하고 있다.

KT의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 매장은 거실·욕실·놀이방 등 여러 가지 테마로 꾸민 공간에서 각종 스마트기기를 사용해볼 수 있다.
삼성전자의 디지털플라자 홍대점은 카메라 매장과 함께 4가지 테마의 라운지 존으로 꾸몄다. 실내에는 커피점이 입점해 있다.

삼성전자가 작년 8월 오픈한 전자제품 매장 '디지털플라자 홍대점'은 4개의 라운지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휴대형 에어컨과 사운드바 등 1인 가구가 좋아할 만한 제품을 모아놓은 '부티크 라운지', 팔목에 차는 스마트기기인 기어핏과 헤드폰 등으로 꾸며진 '액티브 라운지', 사진을 손쉽게 분류할 수 있는 스마트카메라와 무선 포터블 오디오 등을 전시하는 '트래블 라운지' 등이다. 매장 1층에는 커피전문점 '폴바셋(Paul Bassett)'도 들어와 있다.

직접 써보고 구매하세요

라운지형 매장은 IoT(사물인터넷) 제품이나 전자책(e북) 등 기존에 없던 신제품을 소개하고 고객이 체험하는 장소로도 유용하다. 인터넷 서점 예스24는 서울메트로 9호선 신논현역에서 고객이 전자책 단말기 '크레마'를 직접 써보고 휴식도 취할 수 있는 '크레마라운지'를 운영한다.

LG유플러스는 대규모 '홈IoT 체험 매장' 두 곳을 서울에 오픈할 계획이다. 거울 표면에 피부 상태를 진단해주는 기능을 탑재한 '매직미러', 홈CCTV '맘카' 등 첨단 IT제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SK텔레콤은 작년 12월 최신 스마트폰과 주변기기를 만져볼 수 있는 'T프리미엄' 매장 5곳을 수도권에 개설한 데 이어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물건이 아닌 브랜드를 파는 공간

고객과 제품이 만나는 매장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란 개념을 넘어 기업 문화를 소개하고 고객 체험을 확대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애플이 자사의 디자인 철학을 담은 외관과 전시 콘셉트로 꾸민 매장 '애플스토어'가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는 다음 달 서울 강남역 인근에 애플스토어 같은 고객 체험형 매장을 오픈한다. 내부에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젊은 층이 선호하는 오디오 청음(聽音)시설을 운영하고 카페도 들어설 계획이다. 현대차는 커피빈과 함께 서울 '여의도 카페 지점'과 '성내 카페 지점'도 운영 중이다. 한국토요타자동차가 작년 10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오픈한 자동차 전시장 '커넥트 투'는 '휴식의 숲'을 테마로 전시 공간을 꾸몄다. 고객들이 차와 디저트를 즐기며 자동차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가구 브랜드와 고급 음식점·호텔의 이미지를 결합하는 시도도 있다. 가구업체 까사미아는 서울 압구정동과 홍대입구에서 레스토랑 '까사밀'을 운영한다. 이곳에는 까사미아가 판매하는 가구들이 비치돼 있다. 고객이 식사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자사 제품을 접하도록 만든 것이다.

신훈주 KT 마케팅 담당 상무는 "고객이 멋진 카페나 독특한 패션숍에 들른 듯한 느낌으로 서비스를 경험하면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진다"며 "고객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일종의 '힐링'을 제공하는 매장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