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금융 문맹(financial illiteracy)은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21세기형 문맹이고, 글을 못 읽는 문맹(illiteracy)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그 '무서운 결과'가 한국 사회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신용 불량자(채무 불이행자)'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사람을 포함해 매년 약 25만명이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다.

본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신불자로 떨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 50여명을 심층 인터뷰해 생생한 육성(肉聲)을 들어봤다.

"돈 무서운 줄 몰랐다"

임모(여·45)씨="신용카드가 얼마나 무서운 물건인지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죠. 제가 영업을 하면서 500만원을 벌었는데 '카드 조금 써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었거든요. 안 사도 되는 옷을 사게 되고, 쇼핑하게 되고, 안 가도 될 클럽을 가고…. 주변에 800만~900만원씩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을 봐도 또 그 사람들은 1000만원, 1200만원씩 쓰면서 빚쟁이고 그렇더라고요. 사실 다 빚쟁이인 거예요. 그걸 잘 몰랐죠."

이모(40)씨="주변 사람들이 내가 돈 쓰면 '젊은 사장', '돈 많은 부호' 이렇게 치켜세워주니 더 으쓱해서 펑펑 써댔죠. 아마 한 달에 1000만원, 2000만원은 쉽게 썼을 겁니다. 카드로도 쓰고 현금으로도 쓰고 그냥 막 썼죠. 워낙 제가 돈 쓸 때 쓰다 보니까…. 그런데 돈이 없어지니까 주변에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친구가 아니더라고요."

신용등급이 뭔지도 몰랐다

이모(33)씨="빚 내서 사업하다가 한 방에 망했어요. 돈을 갚아가는 와중에 처음으로 은행을 찾았어요. 그때 처음 신용 등급이라는 것이 있고 지금 내가 8등급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리볼빙(카드 장기대출)을 써서 등급이 그렇게 낮아진 것도 알았고요. 그래도 어딘가는 대출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은행을 30군데 넘게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신용등급이 낮으니까 인간 취급을 안 해주더라고요. 진짜 '신용 등급은 사람 등급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내가 너무 무지했던 거죠."

임모(61)씨="신불자가 된 다음에 재취업을 하려고 나름 노력을 했고, 그래서 한 번은 취업이 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신원조회서를 떼오라고 하더라고. 근데 신용 불량자는 이걸 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못 들어갔어요. 이때가 2005~2006년쯤이에요.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안 돼서 완전히 그냥 포기했죠. 신용 불량자는 아무런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빚의 고통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강모(35)씨="아버지가 보증 사기를 당해 집안이 무너졌어요. 대학생이던 제가 돈을 빌려 병원비와 생활비를 댔죠. 카드사와 대부업체에서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와요. 독촉 전화, 그거 받아본 사람만 압니다. '당신 아버지 잘못이 당신 잘못이다. 제대로 못하냐' 이런 것은 일상이었고요.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독촉을 받다보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 내 인생이 시궁창에 빠진 쥐보다 못하다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손모(60대)씨="2010년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어요. 그 전까지는 어렵지만 빚 없이 살았는데,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 광고에 눈을 돌렸어요. 연이자 48%에 선이자 36만원을 제하고 564만원을 주더군요. 원금 10만원에 이자 30만원을 합쳐 한 달에 40만원씩 갚는데 2년 넘게 갚아도 이자는 줄어들지 않고, 삶은 피폐해졌어요. 아들놈 등록금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곤 하지만, 이건 말이 좋아 대출이지 내 발로 살인행위나 다름없는 짓을 해대는 소굴로 들어갔음을 직접 당하고서야 알았습니다."

자식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전모(여·49)씨= "무조건 카드를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카드로 돈을 쓰면 너무 쉽게 써요. 물론 요즘 세상에 카드를 아예 안 쓸 수는 없겠죠. 젊은 애들은 포인트다 뭐다 해서 카드 많이 쓰지만, 그 포인트가 기간 지났다고 없어지고, 포인트 쓰려면 또 어디서 뭐를 사야 하고 이렇잖아요. 진짜 조금만 잘못하면 카드가 빚을 만드는 것 같아요."

박모(여·47)씨="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네 것만 써라'고요. 마트를 가도 사주겠다고 한 것 이외에 다른 것을 들고 오면 '그럼 네 돈으로 살래?' 물어보죠. 중학교 2학년생한테요. 조금 가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런 것을 배우지 못했고 잘 몰라서 이 모양으로 살고 있잖아요. 빚지지 않고 분수에 맞게 사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전 그걸 애들한테 항상 가르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