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 호박넝쿨, 테라펀딩서 40억 조달해 가평에 233세대 아파트 건설 추진
"평당 60만원 절감 가능"…"기존 PF시장 재편될 것" 분석도

P2P대출로 자금을 모집해 짓는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행사 호박넝쿨은 P2P대출업체 테라펀딩을 통해 40억원을 조달해 경기도 가평군에 233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이 단지는 9238㎡ 사업부지 면적에 15층, 4개동 아파트로 구성된다.

테라펀딩은 P2P대출과 관련한 법이 미비한 점을 감안해 수수료를 거의 받지 않는 베타서비스를 통해 자금조달을 중개할 계획이다. 그러나 투자자를 얼마나 모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P2P대출(Peer-to-Peer Lending)이란 은행 등의 금융 중개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과 개인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것을 말한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사되면 ‘핀테크(IT와 금융을 융합한 단어)는 소액 중심’이라는 인식을 깨뜨리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저축은행 등 기존 금융권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자금을 대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완전히 재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평당 60만원 절감 가능…저축銀 "기존 PF시장 재편될 수도"

호박넝쿨의 송모 대표가 P2P대출업체의 문을 두드린 것은 "기존 금융권의 자금조달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투자자들에게 직접 자금 조달을 받을 경우 에이전트 비용 등이 들지 않아 수익성을 훨씬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 테라펀딩의 문을 두드렸다.

송 대표와 테라펀딩에 따르면 가평의 부지는 토지대가 42억원선이다. 시행사 호박넝쿨은 부지 매입 계약금 10억원, 등기비 1억500만원, 설계비 2억 5000만원을 자기자본으로 집행한 상태였다. 송 대표는 토지 잔금과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테라펀딩을 찾았다.

기존의 자금조달 방식대로라면 송 대표는 곧바로 신탁사에 찾아가야 한다. 통상 아파트 시행사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데, PF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은 향후 토지와 지상건축물을 담보로 잡기 위해 시행사가 신탁사와 관리형토지신탁 계약을 맺기를 요구한다. 설령 시행사가 부도가 나더라도 신탁 계약이 체결돼 있으면 신탁사가 사업 주체가 되어 건물을 올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주체가 바뀌어도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수익권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신탁사는 관리책임을 이유로 높은 신탁비용과 책임준공이 가능한 시공사(건설사) 선정을 요구한다. 책임준공이 가능한 시공사는 신용등급 BBB 이상으로, 통상 도급순위 300위 이내 기업이다.

송 대표에 따르면 직접 대출을 받을 경우 평당 60만원 절약되며, 전체적으로 40억원 이상 절감이 가능하다. 이를 시행사 수익으로 잡거나 분양가를 낮추는데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테라펀딩의 관계자는 "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PF시장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는 전환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시장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지만 금융권을 제외한 사업 모델이라는 점에서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처음엔 난색…P2P대출 투자자 몰려들며 "해보자" 선회

테라펀딩은 처음엔 조달자금 규모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다. 현재 테라펀딩을 통해 투자하는 사람은 대략 70~80명 정도. 80명으로는 40억원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까지 테라펀딩의 최대 조달 자금은 10억원이었다.

하지만 최근 생각을 바꿨다. P2P대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는 것을 보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테라펀딩 관계자는 "지난해말 문을 연 테라펀딩의 현재 누적 거래 규모는 18억원선"이라며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P2P대출의 수요가 있다는 걸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모집은 빠르면 다음주내 진행될 예정이다.

테라펀딩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투자금이 들어오면 곧바로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자금을 신탁사에 맡긴다. 신탁사에 자금대리사무를 맡겨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신탁사는 돈이 들어오면 수익권증서를 만들어주는데 테라펀딩은 투자자들에게 이 증서를 배부한다. 이후 준공이 되면 사업자는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고, 기존 P2P대출금은 상환한다. 투자자 수익률은 연 10~20%선이다.

양태영 대표는 "대한주택보증과의 공증협약을 통해 토지에 대한 1순위 수익권을 확보할 것"이라며 "설령 분양이 저조하다고 해도 부동산투자회사(리츠)를 통한 임대주택 전환으로도 투자원금 보존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현재는 법미비…P2P대출 합법화 검토 중

현재 테라펀딩, 머니옥션 등 P2P대출업체는 익명조합 설립 형태로 대부업법 위반을 비켜가고 있다. 기존 대부업법에 따르면 투자자는 관할 지역에 대부업자 등록을 해야 자금을 빌려줄 수 있지만 익명조합을 설립하고 조합에 투자하는 형태를 도입해 법을 우회했다. 그러나 이 또한 엄밀히 말하면 법 위반 여부로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대부업계의 판단이다.

P2P대출 허용 여부는 현재 금융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 중이다. 크라우드펀딩법과 연계해 합법화하는 것이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이란 불특정다수의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크라우드펀딩법은 4월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