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갑자기 싱크홀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매몰됐다. 섣불리 접근하면 추가 붕괴가 우려되는 긴박한 상황이다. 다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에서 바퀴벌레가 현장에 전격 투입된다. 등에 통신장치와 카메라를 맨 '사이보그(Cyborg) 동물'이다. 이 바퀴벌레는 사람의 조종에 따라 조그마한 틈 사이로 움직이며 매몰 현장 내부와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곧 현실에 등장할 사이보그 동물이 활약하는 모습이다. 바퀴벌레 외에도 쥐·거북이·딱정벌레 등에 관한 사이보그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마음대로 조종하는 바퀴벌레

사이보그는 생명이 있는 동물의 신체 일부를 기계로 개조하거나 전자장치를 부착한 형태를 말한다. 로봇이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기계 장치인 것과 달리 사이보그 동물은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체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동물을 통제해 행동을 조종하는 것이 사이보그 기술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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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A&M대 연구팀은 지난 4일 영국왕립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바퀴벌레에 조종장치를 달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바퀴벌레의 다리 움직임을 맡는 뇌 신경을 찾아서 전기자극 장치를 연결했다. 3쌍인 바퀴벌레의 다리는 좌우 3개씩 번갈아 움직이면서 앞으로 나가거나 방향을 바꾼다. 연구진이 설치한 전기자극 장치는 바퀴벌레의 양쪽 가운데 다리를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른쪽 가운데 다리를 마비시키면 오른쪽으로 향하고, 왼쪽 가운데 다리를 마비시키면 왼쪽으로 간다.

바퀴벌레는 여러 '사이보그 동물'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방사능으로 가득 찬 곳에서도 살아남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데다 자기 몸무게의 3배에 이르는 기기를 짊어지고도 거뜬히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로봇은 사고 현장 내부가 붕괴되는 등 예상치 못한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하지만 살아 있는 바퀴벌레는 생존본능 덕분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쉽게 탈출할 수 있다. 최초의 사이보그 바퀴벌레는 1997년 일본 도쿄대 연구팀이 만들었다. 연구팀은 바퀴벌레가 자신이 지나갈 공간을 더듬이의 촉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 착안, 헬멧을 만들어 씌웠다. 이 헬멧이 더듬이를 자극하면 바퀴벌레는 앞에 장애물이 있다고 생각하고 방향을 바꿨다.

지난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앨퍼 보즈커트 교수는 재난 현장의 생존자 파악에 특화된 사이보그 바퀴벌레를 만들었다. 등에 소형 마이크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이 바퀴벌레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목소리나 소음 등을 수집해 전송한다. 보즈커트 교수는 "바퀴벌레는 어두운 곳으로 가는 습성이 있다"면서 "특별한 조종이 없어도 끊임없이 매몰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쥐·거북이도 사이보그로 개발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지원을 받은 UC버클리 마이클 마하르비즈 교수 연구팀은 딱정벌레를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가게 하는 사이보그 기술을 개발했다. 마하르비즈 교수는 딱정벌레의 머리에 날개 신경과 연결된 전기장치를 심었다. 이 장치가 특정 주파수를 발생하면 곤충은 이를 장애물이 내는 소리로 인식하고 방향을 바꾼다. 다 자란 딱정벌레에 전기장치를 이식하면 거부반응이 생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애벌레가 번데기로 변할 때 전기장치를 이식했다. 그 결과 딱정벌레는 전기장치를 자연스레 몸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사이보그 쥐 연구 역시 활발하다. 쥐는 벌레보다 더 능동적이고 고성능 장치를 착용해도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사이보그 쥐를 개발해온 DARPA의 존 채핀 박사팀은 최근 현장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일일이 조종하지 않더라도 사람을 찾거나 물건을 옮겨놓는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다. DARPA는 사이보그 동물을 군사용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KAIST 해양시스템공학부 이필승 교수팀은 사이보그 거북이를 만들어냈다. 거북이의 등에 붙인 가상현실 장치로 가짜 장애물을 보여줘 거북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거북이는 검은색 물체를 피하는 습성이 있다. 이 점을 활용하면 복잡한 가상현실 장치가 아니더라도 검은색을 비추는 것만으로 조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