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가 뉴욕에 자신의 이름을 건 첫번째 메인 샵을 냈다. 톰 포드는 구찌에서 14년간 수석디자이너(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 세계적인 디자이너다.

톰 포드가 첫 매장을 낸 지 얼마 안 돼 한 한국인 청년이 그의 뉴욕 사무실에 찾아가 인턴십을 따냈다. '제1호 인턴'이었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백인 여성들은 이 키 작은 동양인 남자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상사 중 한 명은 청년에게 스테이플러를 집어던지기도, 새벽 3시까지 퇴근시키지 않고 일을 시키기도 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던 중, 상사 두 명이 톰 포드를 떠나며 청년에게 정식 사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톰 포드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이 간절히도 갖고 싶었다. "3년 간 월급을 안 줘도 좋으니 명함만 달라"고 졸랐다.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 바로 다음 주, 그렇게 바라던 명함을 손에 넣었다.

미국판 '미생'의 주인공은 바로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이사. 그는 "톰 포드가 워낙 고가 브랜드였기 때문에 회사에 다니는 동안 3개월 일하고 셔츠 한 장을 겨우 사 매일 빨아 입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미미박스는 다양한 브랜드의 화장품을 모아 판매하는 쇼핑 플랫폼이다. 화장품만 판매하는 티켓몬스터, 쿠팡이라고 보면 된다.

지난 달 서울 역삼동 미미박스 사무실에서 하 대표와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를 만났다. 미국에 있는 구 대표는 실시간 화상 채팅(스카이프)으로 인터뷰에 참여했다. LS가(家)의 장손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최근 미미박스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고 현재 투자 금액을 최종 조율 중이다.

▲왼쪽(스크린)부터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이사,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이사, 노자운 기자. 구 대표는 미국에 있어 화상 채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형석= 군대에 있을 때 자원해서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갔어요. 그 때 만난 미국인 친구들 덕분에 뉴욕에 놀러가게 됐죠. 신세계더군요. 세계 패션의 중심지잖아요. 문득 패션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등학교때부터 파슨스디자인스쿨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으니, 그 학교에 원서를 냈는데 어떻게 덜컥 합격하더라고요(그는 경희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무급 인턴십을 8개 했고 그 중 한 개가 톰 포드였어요.

그는 2년 간 톰 포드에 다니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옷을 파는 게 주 사업이었지만 돈은 다 화장품(향수)으로 벌고 있더라는 거다. 옷은 서양인과 동양인의 체형에 각각 맞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업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데 제약이 있지만, 화장품이야말로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대표는 그러던 중 한 다리 건너 알던 친구들이 티켓몬스터를 창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티몬에 합류해 패션뷰티팀장으로 일하며 모바일과 패션 산업을 접목한 신사업을 배웠다. 미미박스를 창업한 건 2012년 2월의 일이다.

▲미미박스 애플리케이션의 실행 화면. 다양한 브랜드의 화장품을 한 곳에 모아 판매하고 있다.

하= 사업을 시작하고 3개월이 됐을 때, 월매출이 2억원 정도였어요. 사업이 정말 쉽게 느껴지더군요. 책에서 보면 '좋은 인재를 많이 뽑으라'고 하잖아요. 사람도 많이 뽑았어요. 그런데 사업이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경영을 잘못 하는 바람에 회사가 2억5000만원의 빚을 지게 됐어요.

망하면 한 달에 100만원씩 25년을 갚으면 되는 거라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회사를 살려보자고 마음먹었죠. 회사에 두 개의 방을 만들었어요. 한 방에는 이사들을 모두 몰아넣고 빚 독촉 전화만 받게 했어요. 다른 한 방에는 회사를 살리는 '생존 리스트' 멤버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회사를 다시 일으켜세웠죠.

하 대표가 구본웅 대표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말. 미국 진출 후 사무실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하 대표가 장래영 포메이션8 부사장을 통해 팔로알토의 포메이션8 사무실에 '얹혀 살게' 됐다.

구본웅= 그 때는 아직 투자에 관해 논의하기 전이었어요. 미미박스가 저희 사무실에서 임시로 지냈는데 미국 친구들보다 2~3배 더 열심히 일하더군요. 매일 컵라면 먹고 박카스 마시면서 야근하더라고요. 미국인 직원들이 "쟤네는 아침에 출근해도 있고 밤에도 안 간다"고 말하는데, 한국인 친구들이 미국 와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 보니 개인적으로 뿌듯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