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과장은 조용하다. 사무실에서는 업무적인 대화 외엔 말이 없고, 다른 사람의 농담에도 소리 없이 혼자 씩 웃을 뿐이다. 회사에서 특별히 친분을 주고받는 관계가 없어 고민을 상담할 선배도, 고민 상담을 해오는 후배도 없다. 온종일 사무실 파티션 안에 틀어박혀 있고, 업무가 끝나면 언제나 집으로 직행하니 '사내 정치'는 남 얘기일 뿐이다.

다만 탁월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은 늘 그에게 팀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긴다. 어떤 일을 맡겨도 최단 기간 안에 최대한 결과를 도출하니 K 과장은 팀장이 가장 신뢰하는 직원이고, K 과장의 업무에 대해서라면 팀장은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는다. 사소한 업무에도 팀장의 간섭과 꾸지람을 받는 다른 직원들에겐 부러움 대상이자, 좋은 험담 대상이기도 하다.

어느 날 술자리. 누군가가 K 과장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K 과장은 진짜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몰라. 직장 생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좀 사람들하고 어울리기도 해야지, 아무리 일 잘해도 회사에서 자기 일만 하고 집에 가면, 선배 대접 제대로 못 받는다." 그저 그런 타박이 오가고 있을 때, P 과장이 슬쩍 끼어든다. "다들 잘 모르면 조용히 해. K 과장, 정신과 치료 받으러 다녀."

P 과장이 팀장으로부터 조심스럽게 들은 얘기에 따르면, K 과장은 오랫동안 정신과에서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워낙 내성적이지만, 어쨌든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먹고살아야 하는 직장 생활은 그에겐 하루하루가 조용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으면서 회사에서 주어진 일만 열심히 처리해 나가고 싶었지만, 자신과 같은 성격이 조직 생활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이것이 그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다. 사실 팀장이 K 과장에게 특별한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도 K 과장의 상황을 감안한 배려였던 것이다.

그저 훌륭한 업무 능력만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직장 생활이다. 필요 이상의 인간관계와 일정 수준의 사교 능력까지 요구하는 회사에서, 혼자 조용히 자신과 전투를 치르고 있는 우리 주변의 많은 K 과장을 응원한다. 내성적인 성격은 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