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증권사 직원 A씨가 돈 낼 준비를 한다. 스마트폰을 켜고 '○○ 페이'라 쓰인 앱을 연 다음 비밀 번호 6자리를 입력하자 화면에 바코드가 뜬다. 식당 직원은 카운터에 설치된 리더로 바코드를 읽는다. 결제 완료다. 건너편 식당에서 밥을 먹은 보험사 직원 B씨도 밥값을 낸다며 스마트폰을 꺼낸다. 그는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쓰듯이 식당 카운터의 전용 단말기에 전화기를 갖다 댄다. 역시 결제 완료다.

A씨는 스마트폰 앱 카드, B씨는 스마트폰 모바일 카드를 쓴 것이다. 플라스틱 신용·체크카드를 대체할 오프라인 간편 결제 시장을 장악하려는 '앱 카드' 대 '모바일 카드'의 주도권 전쟁이 달아오르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결제 시스템인 '삼성페이'가 가세하면서 전세(戰勢)가 급박하게 변하고 있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합성어)의 진정한 승부는 전체 카드 결제 시장의 85%를 차지하는 초대형 '파이'인 오프라인 세계에서 판가름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전황(戰況)은 이렇다. A씨처럼 앱을 열어 바코드를 읽는 방식의 '앱 카드'에 주력하는 신한·삼성·현대카드 등 '앱 카드 진영'이 카드 가입자 기준으론 가장 큰 축을 형성한다. 반대편에선 전세 역전을 노리는 하나·BC카드 연합군인 '모바일 진영'이 매섭게 진격 중이다. 팽팽한 두 카드 진영의 총력전이 진행되는 가운데 최근 삼성전자가 '삼성페이'라는 새 무기로 올해 여름 강타(强打)를 날리겠다고 선언을 한 상태다. '찍기'(앱 카드), '대기'(모바일 카드), '쏘기'(삼성페이) 중 최후의 승자를 가르기 위한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다.

◇'찍는' 앱 카드 vs '대는' 모바일 카드

앱카드 방식

플라스틱 신용카드 없이 휴대폰에 신용카드를 결합한 형식의 스마트폰 간편 결제 기술은 지금까지 두 갈래로 진화해 왔다. '앱 카드'는 스마트폰 앱이 신용카드를 대체하는 방식이다. 한 차례 등록 절차를 마치면 다음부터는 앱을 열고 비밀번호 6자리를 입력해 쓰면 된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바코드·QR코드 방식 중 하나를 고른 다음 이 바코드·QR코드를 상점 직원에게 보여준다. 직원이 리더기로 화면을 찍어 결제를 완료한다. 결제가 완료될 때까지 휴대폰을 켜고 앱을 구동시키고 단계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등 결제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단점이지만, 그만큼 보안이 탄탄한 것은 장점으로 꼽힌다. 롯데·삼성·신한·현대·KB·NH카드 등 '앱 카드 협의체'가 이 방식을 밀고 있다.

또 하나의 축은 '모바일 카드'다. 금융 거래가 가능한 휴대폰 유심(USIM·범용 가입자 식별 모듈)카드에 신용카드 정보를 심어두고 가맹점 단말기에 스마트폰을 대는 방식으로 결제를 한다. 이 방식에 베팅한 회사는 하나·BC카드 등으로 간편함을 최대 강점으로 내세운다. 금융 거래가 되는 유심카드가 꼭 필요하고,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때 곤란하다는 점이 단점이다.

2010년대 초부터 진행돼 온·오프라인 간편 결제 전쟁의 승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두 방식을 쓰려면 바코드를 읽거나, 모바일 카드를 인식하는 별도 단말기가 가맹점에 있어야 하는데 이를 설치한 오프라인 가맹점이 많지 않은 탓이다. 가맹점은 앱 카드가 약 5만개, 모바일 카드는 현대백화점·이마트·롯데마트·스타벅스 등 대형 체인점을 포함해 약 3만개 수준이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가맹점 수가 미미하지만 정부가 오프라인 모바일 간편 결제 시장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어 이 시장이 순식간에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카드 규제 풀려

모바일카드 방식

카드사들이 두 무리로 쪼개진 배경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앱 카드 진영에 가담한 회사들은 대부분 시장의 주도권을 잡은 카드사들이다. '앱카드 협의체'의 시장 점유율은 50%가 넘는다. 이들은 시장의 판도가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들이 모바일 카드를 꺼리는 이유 중엔 유심카드에 카드 정보를 심는 과정에서 결제 시장의 주도권이 통신사로 넘어가는 것을 껄끄러워한다는 점도 있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 카드를 쓰면 카드사가 이동통신사에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점도 이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모바일 카드를 밀어붙이는 두 카드사는 모두 이동통신사(하나카드-SK텔레콤, BC카드-KT)가 지분을 가진 회사들이다.

지금으로선 플라스틱 카드가 없으면 스마트폰에 앱·모바일 카드를 설치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 회원 수가 많은 앱 카드 합의체가 유리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오프라인 간편 결제 활성화를 위해 늦어도 6월까지는 플라스틱 카드 없이도 앱·모바일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기로 하면서 회원 수가 적은 모바일 진영이 힘을 받고 있다. 하나카드 관계자는 "규제가 바뀌면 막대한 회원을 이미 보유한 카드사가 누리던 선점 효과가 사라지고 진짜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페이 결제 전쟁 가세 "새로운 게임이 시작된다"

삼성페이 방식

승자 예측이 어려웠던 카드사들의 전쟁은 예상치 못한 변수와 맞닥뜨렸다. 글로벌 IT(정보기술) 공룡 삼성전자가 미국 전자 결제 회사 루프페이를 인수하면서 결제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애플의 온·오프라인 결제 시스템인 '애플페이'에 맞서 나온 '삼성페이'는 올해 여름 한국·미국에서 선을 보일 예정이다. 지금의 마그네틱 신용카드는 결제 단말기에 긁을 때 고유의 자기장(磁氣場)이 형성되면서 결제가 된다. 삼성페이는 스마트폰이 이 자기장을 대신 형성해 단말기에 쏘고, 단말기가 이를 신용카드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현재 한국에만 250만개, 세계적으로 약 3000만개에 달하는 기존의 마그네틱 단말기를 쓸 수 있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보안을 이유로 마그네틱 카드를 IC카드로 대체하고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마그네틱 방식과 함께 NFC 기술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금융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카드사들과 협력해야 한다. 앱·모바일카드 진영의 모든 카드사는 이미 삼성페이에 동참하기로 협상을 마친 상태다. 미국에선 마스터·비자카드, 뱅크오브아메리카 등과 손을 잡았다.

삼성전자는 일주일간의 미국 출장을 마치고 4일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에서 미국 카드업체 최고경영자(CEO)들과 갤럭시S6에 탑재된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삼성페이'와 관련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