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최근 3개월 사이에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우리 기준금리를 연 2.0%에서 묶어놓은 한국은행의 입장이 궁색해졌다. 한은은 ‘공급측 요인에 따른 저물가는 금리 인하로 대응해서는 곤란하다’고 대응했는데, 국제 유가 하락으로 피해를 보는 산유국뿐 아니라 원유 소비가 많은 중국마저 금리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자 한은의 주장이 약화된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사진)가 지난달 “각국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환율전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한가한 소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각국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결과적으로 주변국의 환율 절하로 이어졌고 원화가 나홀로 상승하는 상황인데 교과서적인 의미의 환율전쟁은 아니라는 총재의 설명은 전문가들이나 시장 참여자들의 체감과는 너무 괴리돼 있다.

한은이 ‘한가한 소리’를 하는 사이 금리 인하론자들의 무기는 저성장·저물가에서 하나 더 늘었다.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이 통화정책을 통해 환율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 통화정책은 상대적으로 긴축적인 상황이 됐고, 이렇게 계속 손 놓고 있다가는 수출 등 우리 경제에 피해가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올해 한은의 성장률 전망이 기존 3.9%에서 3.4%로 하향 조정됐고, 저물가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에 그쳤다. 1999년 7월(0.3%) 이후 최저치다. 그나마 0.5%라도 물가가 오른 것은 올해 담뱃값이 인상된 영향이다. 이를 제외하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다.

또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1월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14.41로 세계 금융 위기 이전인 2008년 2월(118.79) 이후 6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질실효환율은 세계 61개국의 물가·교역 비중을 고려해 각국 통화의 실질적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로, 기준치(100)를 넘으면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최근 2년 우리나라 실질실효환율 상승률은 베네수엘라·홍콩·아랍에미리트 다음으로 네 번째로 높았다.

금리 인하 시 우려되는 부작용을 걱정하기에는 우리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여기에 한은이 내미는 마지막 카드는 ‘가계부채’다. 안 그래도 지난해 두 차례 이어진 금리 인하로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는데 여기서 또 금리를 내리면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민간연구소 경제박사는 “엄밀히 따지면 가계부채는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의 영역이지만,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할 이들이 지난 수년 동안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금융시장 안정을 담당하는 한은에 짐이 떠넘겨진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은행이 ‘가계부채의 덫’에 걸려도 단단히 걸려 있는 셈이다.

한은 내부에서는 일부 변화의 기운이 감지된다. 한 한은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한은이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하며 금리 인하론에 맞서왔는데, 금리 방어(동결론)의 근거가 가계부채만 남은 상황에서 저성장·저물가에 대응이 늦지 않으려면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며 “가계부채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관리해라, 한은은 큰 틀에서 경기 활력 제고에 더 힘쓰겠다는 태도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