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환율이 이상하다. 금년 2월까지 경상수지가 36개월째 흑자를 보이고 있는데도 원-달러 환율의 평가절상 수준은 미미하다. 지난 해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894억달러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최근 1100원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는 원-달러 환율은 2012년 10월초와 같은 수준이다. 그동안 2000억 달러에 가까운 경상수지 흑자는 왜 환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환율은 국제수지의 균형을 가져오는 리밸런싱 메카니즘이다. 외환시장의 수급에 의해 환율이 결정되도록 맡겨두면 경상수지 흑자국의 통화는 평가절상 되고, 적자국 통화는 평가절하 되어 수지의 균형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IMF에서도 각 국의 환율정책 평가에 경상수지 규모의 적정성을 여러 가지 지표와 연계하여 반영하고 있다.

경상수지와 원

2010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환율의 유연성을 요구하기 위한 소위 ‘예시적 가이드라인(indicative guideline)'을 만들기로 했다. 결국 최종합의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논의되었던 경상수지 관리기준은 경상수지를 GDP의 4%내로 관리할 수 있도록 환율의 유연성을 요구하자는 안이었다. 이러한 모든 발상은 환율변동이 국제수지의 균형을 회복하게 만드는 메카니즘이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 흑자가 지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국제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가장 기초적인 환율 이론이 우리나라 외환시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상수지가 환율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이유로 거론되는 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시장개입이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환율변동이 우려될 경우에만 소위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통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되고 있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 외부에서는 환율조작 가능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수출의 대외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의도적으로 환율을 높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외환시장에 개입한 만큼 외환당국의 리저브가 증가해야 하나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 해 일년동안 큰 변동이 없었다.

우리나라 주요 국제수지 항목별 추세

필자는 우리나라 환율이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환율과 경상수지, 달러화의 국제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 등과의 연관관계를 분석해 보았다. 분석 결과 2000년대 들어 원-달러 환율은 경상수지가 30%, 달러인덱스가 70% 가량을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환율이 경상수지에 의해 영향을 받기보다는 달러화의 국제가치에 더 좌우된다는 것이다. 특히 국제금융시장 변동기에는 달러화 인덱스의 영향이 더 증가하고 안정기에는 경상수지의 영향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이 국제적 요인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국내 원-달러 시장의 규모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달러화의 국제가치가 안정적인 시기에는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의 수급이 환율을 결정한다. 따라서 경상수지가 환율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화의 가치가 변동하는 시기에는 국제적 요인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국내 외환시장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원화는 국제적 호환성을 가진 통화가 아니어서 해외에서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은 해외에서의 달러가치 변동에 크게 영향받아 왔다.

지난 주 미국 FOMC의 의사록과 옐렌 미연준 의장의 미국 의회 발언내용은 금리인상 시기를 늦출 것임을 시사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는 상승곡선을 그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증시와 외환시장이 함께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년은 미연준의 금리인상이 예정되어 있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화 가치의 변동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년도 원-달러 환율은 경상수지보다 달러화의 국제가치가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소국개방경제인 우리나라가 환율의 유연성을 높이고 싶어도 원-달러 시장은 국내적 요인의 영향이 제한적이다. 우리 경제 규모를 단기간에 확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 통화 환율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원화의 국제화나 지역통화 협력 등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