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이달 1~9일 중동 4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의 주요 인사와 만나 다양한 분야의 경제 협력을 모색한다. 이번 순방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협력분야는 보건의료 부문이다. 한국 의료진이 중동에 부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현지 의료수준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현지에는 중동에 ‘의료한류’ 열풍이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중동에서 한국 의료가 인기를 끌게 된 배경과 향후 전망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UAE에 사는 술탄 살렘 압둘라 알 자아비씨는 고혈압과 비만으로 2009년부터 만성신질환을 앓았다. 상태가 악화돼 2012년부터 1주일에 3번씩 혈액투석을 받아야 했지만, UAE에는 신장이식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한국의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UAE 국민의 치료비는 모두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중동 국가의 국민 건강 수준은 낮은 편이다. 중동 국가의 비만율은 미국보다 높고 당뇨병, 고혈압 등 성인병 발병률도 높다. 이런 상황들은 국내 병원과 제약사들에게 절호의 기회로 평가된다.

유엔(UN)에 따르면 쿠웨이트의 비만율은 43%, 아랍에미리트(UAE)는 34%, 사우디아라비아는 35%에 이른다. 비만 문제가 심각한 미국의 32% 보다 높은 수준이다. 중동은 비만 합병증인 당뇨병 유병률도 성인 평균 35%의 2배 가량인 60%로 알려져 있다.

중동 지역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밤새도록 여럿이 모여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에도 스테이크, 피자, 파스타 등 서양에서 들어온 고열량 음식을 먹는다.

더운 날씨 탓에 운동을 하지 않는 것도 이들 국가의 비만률이 높은 이유다. 근친혼이 많은 아랍 문화의 특성상 희귀한 유전병도 흔히 발견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일부 중동 국가들은 200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 병원에 자국 환자의 치료를 의뢰했다. 미국과 유럽의 병원들이 중동에 직접 진출하거나 중동 환자를 불러들여 치료했다.

중동 정부는 석유 판매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국민의 의료비를 100% 지원한다. 자국에서 치료 받지 못하면 해외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했다. 병원비와 비행기표 등 등의 비용을 정부가 전액 지원한다.

2009년 8만 5000명의 UAE 국민이 해외에서 지출한 의료비는 2조원이 넘었다. UAE 정부는 이 돈을 아끼기 위해 가까우면서도 의료비가 저렴한 싱가포르와 태국 병원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2009년 UAE에 한국형 원자로를 수출하면서 의료협력이 함께 시작됐다. 당시 보건복지부와 서울대병원은 중동 지역의 낙후한 의료 시장을 겨냥해 현지 진출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달 18일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하는 UAE 셰이크칼리파 왕립병원 개원식이 열렸다. 2009년부터 꾸준히 신뢰를 쌓은 결과다. UAE 대통령실에서 주관한 이날 행사는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UAE 부총리 겸 대통령실 장관, 쉐이크 사우드 라스알카이마 통치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오병희 서울대병원장, 성명훈 UAE 왕립병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 기관의 관계자들은 해마다 4~5차례 UAE 두바이 보건청을 방문하면서 한국 의료의 신뢰를 쌓았다. 2011년 11월부터 국내 병원들도 UAE 정부의 의료비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국내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간 UAE 환자들은 중동 지역 전역에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UAE 두바이 보건청 관계자는 “UAE국민은 한국 병원의 친절한 서비스와 우수한 수술 실력을 만족해 했다”며 “미국은 암 수술비가 1억원에 이르지만, 한국은 절반 이하인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 중동 4개국에서 한국을 찾은 환자는 2552명에 이른다. 이들은 총 207억2708만원의 진료비를 썼다. UAE는 지난해 9월부터 한국 의사 면허를 공식 인정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한국 의사면허를 인정받은 첫 사례였다. 복지부는 나머지 국가와도 의사면허 인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성명훈 UAE왕립 셰이크칼리파 전문병원장은 “1970년대 건설노동자로 성실함을 보여준 한국인들이 이제는 고도의 의료기술로 무장해서 중동에 돌아왔다”며 “중동에 ‘의료 한류’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