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리 국토 동쪽 끝으로 항시 관심 받으며 외롭지 않은 땅 독도. 반세기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6·25 직후 혼란스럽던 1950년대 일본은 무장순시선을 보내 호시탐탐 침탈 기회를 엿봤다. 이들이 독도에 접근할 때마다 막아낸 젊은이들이 있었다. 1953년 4월부터 3년 8개월간 독도를 지킨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다. 이들의 활동상을 그린 짧은 영화 한 편이 오는 5일 공개된다.

서울 신문로의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시사회를 여는 다큐 영화 '독도의 영웅'이다. 생존 대원의 증언과, 젊은 배우들의 1950년대 활동 장면 재연 등으로 구성했다. 유관순 열사(2013년 '소녀의 기도'), 백선엽 장군(2011년 '부산에서 판문점까지') 등 근현대사 소재 다큐 영화를 연출해온 권순도(37) 감독의 12번째 작품이다.

지난해‘독도의 영웅’촬영을 앞두고 답사를 위해 독도에 간 권순도 감독. 그는“독도를 지켜낼 가장 효과적 방법은 남이 넘보지 못하게 우리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 작은 사진들은 영화에서 대원들이 바위산에서 달리고(위), 동해 보초를 서는(아래) 1950년대 의용수비대 활동상을 재연한 장면.

2일 전화로 만난 권 감독 목소리는 밝지 않았다. "요즘 독도를 둘러싼 정세가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다.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하는 게 기정사실이 됐어요. 러시아(북방 4개 섬)·중국(센카쿠 열도)과의 영토 갈등이 표면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잖아요. 독도라고 예외일까요? 게다가 한국은 러시아나 중국에 비해 쉬워 보이는 상대 아닐까요? 그렇기에 독도의용수비대 같은 분들의 존재가 더 절실합니다."

울릉도 출신의 6·25 참전 용사 고(故) 홍순칠이 주도한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 4월부터 경찰이 독도 경비 업무를 인수한 1956년 12월까지 주둔하며 일본의 각종 무력 도발을 막아내며 영토 수호에 큰 공을 세웠다. 자력으로 무기를 마련해 활동했다는 점 때문에 '한국 최후의 의병'이라고도 불린다. 권 감독은 홍순칠 대장의 아내 박영희씨와 생존 대원 정원도씨를 만났고, 독도를 세 차례 답사했다.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에서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았지만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실제 화약과 모형 박격포,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한 일본 순시선 격퇴 장면은 독도와 지형이 비슷한 곳을 수소문하다가 찾아낸 서해 구봉도 해안에서 작년 9월 진행됐다. "배우들이 스태프 노릇까지 해야 할 정도로 여건이 좋지 않았어요. 저도 뛰어다니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지난주에 결국 엄지발톱이 뿌리까지 뽑혀 나갔죠. 60년 전이면 상황은 더욱 나빴을 텐데, 그저 애국심 하나로 똘똘 뭉쳐 지켜냈으니 얼마나 대단한 분들이에요?"

그가 독도와 의용수비대에 관심 갖게 된 계기 하나가 군 복무다. UN평화유지군 일원으로 2000~2001년 동티모르에서 통역·사진병으로 복무했다. 포르투갈 식민지로 350년, 다시 인도네시아 식민지로 30년을 겪고 독립을 앞뒀던 동티모르는 마을의 가옥 대부분이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주민 중엔 내전 후유증으로 불구자가 많았다. 독립(2002년)을 앞둔 신생국의 황폐한 풍경을 보면서 그는 "1950년대 우리 모습이 겹쳐졌고, 스스로 나라를 지켜낼 힘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했다. '독도의 영웅'은 시사회 후 일선 교육기관 상영용 등으로 보급될 예정이다. 권 감독은 "우리가 키프로스나 포클랜드 섬 같은 국제 분쟁 지역에 별 관심이 없듯, 세계인은 독도 문제에 무관심하다"며 "독도를 지켜낼 원동력은 외교도 여론도 아닌 우리 스스로의 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내전 1주년을 맞은 우크라이나를 타산지석으로 제시했다. "서방 세계가 지켜준다고 했지만,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가져가는 동안 전부 나 몰라라 했잖아요. 국제사회는 냉정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죠. 오늘 우리가 독도의용수비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