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진이 프로듀서를 맡은 옴니버스 앨범이 12년 만에 새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삶에 새삼 감사했다. 이 척박한 음악 환경에서 기어이 언 땅을 뚫고 솟는 음악가들의 피는 얼마나 뜨거운가 생각했다. 이제 19년 만의 조동진 신곡을 먼저 소개할지 새 옴니버스에 누가 참여했나 우선 알려야할지 고민이다.

11년 만에 만난 조동진은 예전‘언더그라운드’이미지를 많이 벗은 모습이었다. 그는“세상을 이해하면서 더 밝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조동진 새 노래가 먼저일 것이다. 올해 68세인 그는 평생 아웃사이더로 음유(吟遊)했다. 저 유명한 '쎄시봉 세대'이면서도 서유석 송창식 김세환 양희은에게 곡을 써주며 음악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사에서 지울 수 없는 해인 1979년 그는 난데없이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하며 처음 등장했다. 그 읊조림은 세속의 번다(煩多)함을 허무는 풍경(風磬) 소리였고 질식 직전 폐광 같던 가슴에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이었다. 이듬해 그는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 하는지" 하고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을 위무(慰撫)했다.

2004년 LG아트센터 공연을 끝으로 두문불출했던 그가 3일 내놓는 옴니버스 앨범 '강의 노래'에서 타이틀곡 '강의 노래'를 쓰고 불렀다. 1996년 5집 앨범 이후 19년 만의 신곡이다. "고여드는 마음의 강물/ 우리 이제 다시 흐르니/ 돌아오는 새들의 행렬/ 저 먼 종소리…." 절대 음을 혹사시키지 않고 노래를 문 열어 내보내듯 하는 창법이 그대로다. 심혈관과 알레르기성 질환 때문에 오래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어왔기에, 예전보다 오히려 밝아진 듯한 음색이 반갑다.

"2002년 하나음악이 문을 닫은 뒤에 모든 게 힘들었고 마음의 상처도 있었지요. 건강에 문제가 생겨 제주도에서 몇 년 살기도 했고…. 마지막 옴니버스 주제를 '바다'로 했을 때부터 다음 작품은 '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내놓게 됐습니다." 지난 27일 서울 상수동에서 만난 그는 11년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훨씬 표정이 환했고 말수도 많았다. 검은 머리는 죄 세었고 체중이 꽤 는 듯했다. "오히려 젊었을 때 쓴 곡들이 더 노인 같기도 했죠. 나이 먹고 세상을 이해하면서 어쩌면 더 밝아지는 건지도 몰라요."

옛 하나음악 식구들이 옴니버스 앨범을 내고 뭉쳤다. 이들은 나이·성별 상관없이 조동진을‘형님’이라고 불렀다. 사라져버린‘음악 공동체’의 부활이었다.

조동진 신곡이 실린 음반은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허파였던 기획사 '하나음악'의 후신이라고 할 회사 '푸른곰팡이'의 작품이다. 하나음악을 거쳐간 조동익 장필순 이무하 정원영 한동준 고찬용 박용준 조동희 이규호 등 15명의 뮤지션이 예전 '하나 옴니버스'처럼 한 곡씩 참여했다. 90년대 서울 논현동 하나음악 녹음실을 사랑방처럼 드나들던 이들이 "하나음악은 모임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조동진의 말처럼 오랜만에 뜻을 모았다.

이날 앨범 발매 기념 파티를 겸해 모인 뮤지션들은 조금씩 들떠 있었다. 1집 앨범을 하나음악에서 냈던 정원영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동료들과 다시 음반을 내게 돼서 무척 기쁘다"고 했다. 하나음악 최고의 히트곡 '너를 사랑해'의 주인공 한동준은 "그땐 1년 365일 중 350일쯤을 하나음악에서 보냈고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장필순의 '엄마야 누나야'로 장중하게 시작한 앨범은 정원영 특유의 미니멀한 노래 '새는 걸어간다'로 끝난다. 겨울이 물러가는 강 어귀에 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