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떠올리는 것조차 내겐 힘든 일이라…." 노(老)작가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여섯 살 때였습니다. 2차대전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6년 만에 집에 돌아온 날이었어요. 하필이면 그날 독일군이 집으로 쳐들어 와 총검으로 아버지를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어머니와 제 앞에서 아버지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기억 속 아버지의 첫 모습이 처참히 죽은 아버지라니.

"당신의 인체 조각상엔 까닭 모를 고통이 묻어난다"는 기자의 말에 이탈리아 조각가 노벨로 피노티(76·사진)가 대답 대신 어렵사리 꺼낸 개인사(史)였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노벨로 피노티: 본 조르노'(5월 17일까지)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다.

피노티는 이탈리아 현대조각의 계보를 잇는 거장이다. 1966년과 1984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이탈리아 대표 작가로 참여했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제단도 만들었다. 주한이탈리아문화원에서 직접 나서 이번 전시를 챙기는 조각가다.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는 "미켈란젤로, 베르니니로부터 이어지는 이탈리아 대리석 조각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실존적 주제를 다루는, 구상과 추상의 중간지대를 보여주는 조각가"라고 했다.

"경험은 희미해지기는 해도 지워지지는 않는 흔적이지요. 늘 내 주변에선 경험의 파도가 일렁입니다. 그중에서 가슴에 해일(海溢)을 일으키는 파도를 작품으로 변환해 냅니다." 이번 전시에 나온 38점의 조각은 60여년간 삶을 휩쓸었던 파도의 흔적이다.

하늘을 향해 거꾸로 솟구친 인체가 구원의 절규를 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희생자를 추모하며 만든 조각 ‘체르노빌 이후’(1986~87). 역동적인 인체의 중첩으로 비극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초기 그를 격랑에 휩싸이게 한 파도는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전쟁의 상흔이었다. 절단된 사지가 섬뜩하게 박힌 쇳조각(무제), 파편화된 여성의 신체를 조합한 기둥(발굴된 이미지) 같은 초기작에서 느낄 수 있는 고민이다. '나일강' '셰익스피어에게 바치는 헌사' 등 1970~80년대 작품에선 신화·문학으로까지 확장된 관심을 반영했고, 이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룬 작품 '체르노빌 이후' 등에선 사회 문제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50대 이후 그의 인생에 찾아온 파도는 잔잔하고 포근해졌다. 잠자는 딸과 아들, 손자를 임신한 며느리의 볼록한 배까지 가족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조각가의 육체는 생명에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그가 빚은 조각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행하고 있다. "바닥에 작품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는 피노티의 요청에 따라 미술관 측은 최대한 조명을 어둡게 했다. 그 덕에 전시장 내부는 고요한 어둠에 싸인 예배당 같다. 그 안에서 한 인간의 역사가, 한 편의 서사시가 펼쳐진다.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더 울림이 클 전시다. (02)395-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