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의 정공법(正攻法)인 기준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지 못하는 이유를 가계 부채가 급증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 2%로 사상 최저 수준인 기준 금리를 더 낮추면 1089조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은의 정책 목표가 가계 부채의 총량 관리가 아닌 가계 부채의 질(質)을 개선하고,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높여주는 방향에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금리를 낮추면 가계 부채의 총량은 늘어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단순히 빚의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장기 고정금리 대출로 바꿔주거나 채무자가 빚을 갚을 능력을 올리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채무자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경기 활성화로 소득을 높일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주도적으로 악성 가계 부채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가계 대출 부실이 은행 등 금융 회사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펀드 구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금융감독원 등을 통한 미시적인 감독을 강화해서 가계 부채를 관리하는 방안은 제쳐놓고 금리 인하가 가계 부채를 증가시킨다는 측면만 부각시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대응이 늦어져 만의 하나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 진입하면 가계 부채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게 된다고 걱정한다. 디플레이션은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물건값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과도한 빚을 지고 집을 산 하우스 푸어 등 채무자 입장에선 실질 부채 부담이 커져 직격탄을 맞게 된다.

또 담보로 잡은 주택의 가격이 떨어지면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 전체의 성장도 멈추게 돼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진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행이 가계 부채를 걱정한다면 금융 당국의 가계 부채 감독에 협조하면서 디플레이션이 오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