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 강남의 '청담동 명품거리'.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자 공사장 인부들이 옅은 갈색의 5층짜리 건물에서 인테리어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이곳은 샤넬이 내년에 개장하는 플래그십 스토어(대형 단독 매장). 여기서 10여m 더 걸어가자 초대형 시계 광고판이 걸린 까르띠에 매장이 내부 공사를 벌이고 있다. 청담사거리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보스 매장을 사이에 둔 버버리크리스찬 디오르가 커다란 공사용 펜스로 건물을 가린 채 신축 공사 중이었다.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는 요즘 공사가 한창이다. 갤러리아명품관과 청담사거리를 잇는 약 800m 거리에 즐비하게 들어선 해외 명품(名品) 매장들이 리뉴얼(renewal·재단장) 공사를 벌이고 있다. 전체 60여개 빌딩 가운데 현재 7곳이 신축(新築) 중이다. 주요 매장의 이전과 신축, 신흥 브랜드 진출로 1996년부터 형성된 명품거리의 지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올해 4개 매장 새로 문 열어

명품 시계·보석 브랜드 까르띠에는 청담동에서 7년간 운영했던 5층짜리 단독 매장 인근에 새 건물로 마련해 올해 11월 재개장을 한다. 국내에서 아직 단독 매장을 낸 적이 없는 샤넬도 작년 초 갤러리아백화점 옆에 5층짜리 건물을 700억원에 구입했으며 리뉴얼 공사를 거쳐 내년 상반기 단독 매장을 연다. 크리스찬 디오르는 오는 5월, 버버리는 10월 준공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7일 낮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명품(名品) 거리’에서 해외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단독 매장과 사무실로 쓸 건물의 신축 공사를 벌이고 있다.

이 밖에 여성 의류 브랜드 뻬띠앙뜨 매장에는 올해 9월 이탈리아 명품 란제리 브랜드 라펠라가 들어오고 프라다는 현재 3층인 매장 건물을 내년에 확장할 계획이다.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명품 브랜드도 청담동에 진출하고 있다. 프랑스 잡화 브랜드 제롬드레이퓌스, 이탈리아 남성복 보기 밀라노는 작년 11월 나란히 매장을 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들이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기 위해 옛 건물을 허물고 새롭게 꾸민다"며 "청담동 매장 확보 경쟁이 벌어지면서 이 지역 땅값이 3.3㎡당 3억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땅값 3.3㎡당 3억원… '유커' 명소로도 각광

청담동 명품거리는 높은 임차료 등으로 백화점 매장보다 수익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명품 업체들이 앞다퉈 개점하려는 것은 상징성 때문이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명품거리 매장은 패션쇼나 박람회에 선보인 신상품, 최고가 제품을 진열해 핵심 고객에게 최신 트렌드를 소개하고 이미지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신규 브랜드는 '청담동에 매장이 있느냐'가 백화점 입점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내 유통업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인 관광객(일명 '유커'·遊客) 매출이 급증하는 것도 명품 업체들이 리뉴얼 공사를 벌이는 주된 요인이다. 실제로 '소녀시대' 등이 소속돼 있는 SM엔터테인먼트 사옥(社屋)은 갤러리아백화점 인근에 있다. 이런 이유에서 청담동은 명품 구매와 K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유커들의 명소(名所)로 각광받고 있다.

명품 업체들은 '유커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토리버치 매장에는 중국어 안내판이 설치돼 있고, 액세서리 브랜드 크롬하츠는 직원 7명 중 6명이 회사의 지원을 받아 중국어 회화를 배우고 있다. 채정원 신세계백화점 해외패션팀장은 "국내 명품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해지면서 주요 명품 업체들이 일반 매장 숫자는 줄이는 대신 대표성 있는 매장에 더 힘을 실어주는 식으로 마케팅 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